봄날 아침 식사 / 이해인 봄날 아침 식사 / 이해인 냉이국 한 그릇에 봄을 마신다 냉이에 묻은 흙 내음 조개에 묻은 바다 내음 마주 앉은 가족의 웃음도 섞어 모처럼 기쁨의 밥을 말아먹는다 냉이 잎새처럼 들쭉날쭉한 내 마음에도 어느새 새봄의 실뿌리가 하얗게 내리고 있다 Literature(문학)/Poem(시) 2019.09.16
봄 아침 /이해인 봄 아침 /이해인 창틈으로 쏟아진 천상 햇살의 눈부신 색실 타래 하얀 손 위에 무지개로 흔들릴 때 눈물로 빚어 내는 영혼의 맑은 가락 바람에 헝클어진 빛의 올을 정성껏 빗질하는 당신의 손이 노을을 쓸어 내는 아침입니다 초라해도 봄이 오는 나의 안뜰에 당신을 모시면 기쁨 터뜨리는.. Literature(문학)/Poem(시) 2019.09.15
봄이 되면 땅은 / 이해인 봄이 되면 땅은 / 이해인 깊숙히 숨겨 둔 온갖 보물 빨리 쏟아 놓고 싶어서 땅은 어쩔 줄 모른다 겨우내 잉태했던 씨앗들 어서 빨리 낳아 주고 싶어서 온 몸이 가렵고 아픈 어머니 땅 봄이 되면 땅은 너무 바빠 마음놓고 앓지도 못한다 너무 기뻐 아픔을 잊어버린다 Literature(문학)/Poem(시) 2019.09.13
봄 일기 / 이해인 봄 일기 / 이해인 지난 겨울 추위의 칼로 상처받은 아픔, 육교의 낡은 층계처럼 삐꺽이는 소리를 내던 삶의 무게도 지금은 그대로 내 안에 녹아 흐르는 눈물이 되었나 보다 이 눈물 위에서 생명의 꽃을 피우는 미나리 빛깔의 봄 잠시 일손을 멈추고 어린이의 눈빛으로 하늘과 언덕을 바라.. Literature(문학)/Poem(시) 2019.09.12
봄이 오면 나는 / 이해인 봄이 오면 나는 / 이해인 봄이 오면 나는 활짝 피어나기 전에 조금씩 고운 기침을 하는 꽃나무들 옆에서 덩달아 봄앓이를 하고 싶다 살아 있음의 향기를 온몸으로 피워올리는 꽃나무와 함께 나도 기쁨의 잔기침을 하며 조용히 깨어나고 싶다 봄이 오면 나는 매일 새소리를 듣고 싶다 산에.. Literature(문학)/Poem(시) 2019.09.10
봄 편지 / 이해인 봄 편지 / 이해인 하얀 민들레 꽃씨 속에 바람으로 숨어서 오렴 이름없는 풀섶에서 잔기침하는 들꽃으로 오렴 눈 덮인 강 밑을 흐르는 물로 오렴 부리 고운 연둣빛 산새의 노래와 함께 오렴 해마다 내 가슴에 보이지 않게 살아 오는 봄 진달래 꽃망울처럼 아프게 부어오른 그리움 말없이 .. Literature(문학)/Poem(시) 2019.09.08
봄 햇살 속으로 / 이해인 봄 햇살 속으로 / 이해인 긴 겨울이 끝나고 안으로 지쳐 있던 나 봄 햇살 속으로 깊이 깊이 걸어간다 내 마음에도 싹을 틔우고 다시 웃음을 찾으려고 나도 한 그루 나무가 되어 눈을 감고 들어가고 또 들어간 끝자리에는 지금껏 보았지만 비로소 처음 본 푸른 하늘이 집 한 채로 열려 있다 Literature(문학)/Poem(시) 2019.09.07
부고(訃告) / 이해인 부고(訃告) / 이해인 어느 비 오는 날 길에서 나를 만나 조수미 독창회에 간다며 남편과 둘이서 환히 웃던 젊은 주부 구일숙 며칠 전 그의 친척을 만나 "일숙이도 잘 지내지요?" 하니 "글쎄...... 며칠 전에 죽었어요" "아니, 왜요?" "갑자기 암이 번져서 그만......" 죽었어요 죽었어요 며칠 내.. Literature(문학)/Poem(시) 2019.09.02
부끄러운 고백 / 이해인 부끄러운 고백 / 이해인 부끄럽지만 나는 아직 안구 기증 장기 기증을 못 했어요 죽으면 아무 느낌도 없어 상관이 없을 텐데 누군가 칼을 들어 나의 눈알을 빼고 장기를 도려내는 일이 미리부터 슬프고 끔찍하게 생각되거든요 죽어서라도 많은 이의 목숨을 구하는 좋은 기회를 놓쳐선 안 .. Literature(문학)/Poem(시) 2019.09.01
부르심 / 이해인 부르심 / 이해인 나는 한번도 숨을 수 없었습니다 어느날 내가 흰 깃을 치며 무인도로 날아 버린 시인 같은 물새였을 때 뽕잎을 갉아 먹고 긴 잠에 취해 버린 꿈꾸는 누에였을 때 해초 내음 즐기며 모래 속에 웅크린 바다빛 껍질의 조개였을 때 깊은 가슴 속으로 향을 피우던 수백만개의 .. Literature(문학)/Poem(시) 2019.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