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terature(문학) 449

나무 / 이해인

나무 / 이해인 나무야, 네 눈빛만 보아도 나는 행복해. 쓰러질 듯 가느다란 몸으로 그토록 많은 잎과 열매를 묵묵히 키워내는 너를 오래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나는 더욱 살고 싶어져. 모든 슬픔을 잊게 돼. 바람에 흔들리는 네 소리만 들어도 나는 네 마음을 알 것 같아. 모든 이를 골고루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 애쓰는 너. 우리 엄마처럼 웬만한 괴로움은 내색도 않고 하늘만 쳐다보는 네 깊은 속마음을 알 것 같단 말이야.

나의 시 / 이해인

나의 시(詩) / 이해인 제대로 옷을 못 입어 볼품 없어도 키운 정 때문에 버릴 수 없는 나의 시(詩), 써도 써도 끝까지 부끄러운 나의 시(詩)는 나를 닮아 언제나 혼자서 사는 게지. 맨몸으로 펄럭이는 제단 위의 촛불 같은 나의 언어, 나의 제물. 내가 너를 만나면 길이 열린다. 아직 그 누구도 밟지 않은 하얀 새벽길, 그 곳에 비로소 설레이는 나의 하루가 있다.

나를 길들이는 시간 / 이해인

나를 길들이는 시간 / 이해인 홀로 있는 시간은 쓸쓸하지만 아름다운 호수가 된다 바쁘다고 밀쳐두었던 나 속의 나를 조용히 들여다볼 수 있으므로 여럿 속에 있을 땐 미처 되새기지 못했던 삶의 깊이와 무게를 고독 속에 헤아려볼 수 있으므로 내가 해야 할 일 안해야 할 일 분별하며 내밀한 양심의 소리에 더 깊이 귀기울일 수 있으므로 그래 혼자 있는 시간이야말로 내가 나를 돌보는 시간 여럿 속의 삶을 더 잘 살아내기 위해 고독 속에 나를 길들이는 시간이다

나무의 자장가 / 이해인

나무의 자장가 / 이해인 아무리 잠을 청해도 잠이 오지 않는 나른한 여름 눈을 감아도 몸과 마음이 모아지지 않고 멋대로 흩어지는 오후 달디단 바람이 와서 가만가만 나를 달래며 잠들게 해줍니다 초록빛 나뭇잎들이 나무에서 내려와 자장가를 불러줍니다 나는 금방 초록빛 시원한 잠의 숲속으로 들어가 깨어날 줄을 모릅니다

나의 창은 / 이해인

나의 창은 / 이해인 산이 살아서 온다 저만치 서 있다가 나무 함께 조용히 걸어서 온다 창은 움직이는 것들을 불러 세우고 서서히 길을 연다 꿈꾸게 한다 기쁨을 데려다 꽃피워 주는 창은 고운 새 키우는 숲 창 속의 숲마을은 꺼지지 않는 불빛으로 밝아오는 고향 온갖 어둠 몰아내고 처음인 듯 새롭게 창은 부활하는 아침 갑자기 꽃밭이 되어 나를 데리러 오면 나는 작아서 행복한 여왕이 된다 하얀 날개로 하늘을 날으던 구름 어린 시절엔 그리 황홀했던 꿈 지금은 그냥 잊어만 간다 창은 - 나의 창은 오늘도 자꾸 피리를 분다 끝없이 나를 데리고 간다

나의 첫 기도 / 이해인

나의 첫 기도 / 이해인 누워서도 하늘과 숲을 바라볼 수 있는 나의 작은 수방修房을 사랑한다 새들의 노랫소리와 나무들의 기침소리가 거침없이 들어와 나를 흔들어 깨우는 새벽 나의 가슴엔 풀물이 든다 송진 내음 가득한 솔숲으로 뻗어가는 나의 일상 너무 고요하고 평화스러워 늘상 송구한 마음으로 시작되는 나의 첫 기도

나의 시편들 / 이해인

나의 시편들 / 이해인 세상에 발표되지 않은 나의 시편들이 오밀조밀 숨어 사는 책상 서랍에서 싱싱한 과일같은 행복을 꺼내 먹습니다 남에게 읽히지 않은 시들은 싫증이 나지 않은 무구한 얼굴 아무도 소유한 일 없는 귀한 보석을 손에 쥔 듯한 느낌 어쩌면 갇혀 있어 더욱 소중히 느껴지는 나의 언어들을 날마다 포옹하며 사는 기쁨이 있습니다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이 세상 모두를 얻은 듯 행복하고 감미롭습니다

나의 시쓰기 법 / 이해인

나의 시쓰기 법 / 이해인 1. 쓰기 전에 먼저 오래오래 그리고 깊이 생각할 것 2. 다른 이들의 좋은 글들을 많이 읽고, 새겨 읽을 것 3. 어떤 사물에 대해 바르게 묘사할 수 있게 우리말 공부를 충실히 할 것 4. 떠오른 생각들은 일단 메모한 다음 두고두고 발전시켜 나갈 것 5. 늘 진실하고 겸허한 태도로 글을 쓰며 다른 이의 평가도 받아들이되 너무 매이지는 말 것 6. 어떤 글에서든 다른 이에 대한 섣부른 판단이나 어설픈 추측을 피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