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terature(문학) 449

나의 하늘은 / 이해인

나의 하늘은 / 이해인 1 그 푸른 빛이 너무 좋아 창가에서 올려다본 나의 하늘은 어제는 바다가 되고 오늘은 숲이 되고 내일은 또 무엇이 될까 몹시 갑갑하고 울고 싶을 때 문득 쳐다본 나의 하늘이 지금은 집이 되고 호수가 되고 들판이 된다 그 들판에서 꿈을 꾸는 내 마음 파랗게 파랗게 부서지지 않는 빛깔 2 하늘은 희망을 고인 푸른 호수 나는 날마다 희망을 긷고 싶어 땅에서 긴 두레박을 하늘까지 댄다 내가 물을 많이 퍼 가도 늘 말이 없는 하늘

나비의 연가 / 이해인

나비의 연가 / 이해인 가르쳐 주시지 않아도 처음부터 알았습니다 나는 당신을 향해 날으는 한 마리 순한 나비인 것을 가볍게 춤추는 나에게도 슬픔의 노란 가루가 남몰래 묻어 있음을 알았습니다 눈멀 듯 부신 햇살에 차라리 날개를 접고 싶은 황홀한 은총으로 살아온 나날 빛나는 하늘이 훨훨 날으는 나의 것임을 알았습니다 행복은 가난한 마음임을 가르치는 풀잎들의 합창 수없는 들꽃에게 웃음 가르치며 나는 조용히 타버릴 당신의 나비입니다 부디 꿈꾸며 살게 해 주십시오 버려진 꽃들을 잊지 않게 하십시오 들릴 듯 말 듯한 나의 숨결은 당신께 바쳐지는 무언(無言)의 기도 당신을 향한 맨 처음의 사랑 불망(不忘)의 나비입니다, 나는

나를 위로하는 날 / 이해인

나를 위로하는 날 / 이해인 가끔은 아주 가끔은 내가 나를 위로할 필요가 있네 큰일 아닌데도 세상이 끝난 것 같은 죽음을 맛볼 때 남에겐 채 드러나지 않은 나의 허물과 약점들이 나를 잠 못 들게 하고 누구에게도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은 부끄러움에 문 닫고 숨고 싶을 때 괜찮아 괜찮아 힘을 내라구 이제부터 잘하면 되잖아 조금은 계면쩍지만 내가 나를 위로하며 조용히 거울 앞에 설 때가 있네 내가 나에게 조금 더 따뜻하고 너그러워지는 동그란 마음 활짝 웃어주는 마음 남에게 주기 전에 내가 나에게 먼저 주는 위로의 선물이라네

나의 별이신 당신에게 / 이해인

나의 별이신 당신에게 / 이해인 조용히 끝난 하루를 걷어 안고 그렇게도 멀리 살으시는 당신의 창가에 나를 기대이면 짙푸른 시원(始原)의 바다를 향하여 열리는 가슴 구름이 써놓은 하늘의 시 바람이 전해 온 불멸의 음악에 당신을 기억하며 뜨겁게 타오르는 작은 화산이고 싶습니다 내가 숲으로 가는 한 점 구름이었을 때 더욱 가까웁고 따스했던 당신의 눈길 문득 우주가 새로와지는 놀라운 환희의 시심을 처음으로 내게 알게 한 당신 아프도록 순수한 영혼 속의 대화를 침묵 속에 빛나는 기도의 영원함을 날마다 조심스레 일깨우는 당신이여 오직 당신을 통하여 하늘로 난 하나의 문이 열리면 나의 어둠은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하고 어진 눈길 묵묵히 모아 당신이 계신 은하의 강가에서 가슴 적시웁니다 나는 언제나 함께 사는 멀리 가까..

나무의 마음으로 / 이해인

나무의 마음으로 / 이해인 참회의 눈물로 뿌리를 내려 하늘과 화해하는 나무의 마음으로 선다 천만 번을 가져도 내가 늘 목마를 당신 보고 싶으면 미루나무 끝에 앉은 겨울 바람으로 내가 운다 당신이 빛일수록 더 짙은 어둠의 나 이 세상 누구와도 닮은 일 없는 폭풍 같은 당신을 알아 편할 길 없다 오늘은 엇갈리는 만남의 비극 속에 내일은 열리는가 땅 위의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내 존재의 끝은 당신 편히 잠들 날 없는 가장 정직한 나무의 마음으로 당신 앞에 선다

나무책상 / 이해인

나무책상 / 이해인 숲의 향기 가득히 밴 나무책상을 하나 갖고 싶다 편히 엎디어 공상도 하고 나무냄새 나는 종이를 꺼내 그림도 그리고 편지도 쓰고 시의 꽃을 피우면서 선뜻 나를 내려놓아도 좋을 부담 없는 친구 같은 책상을 곁에 두고 싶다 동서남북 네 귀퉁이엔 비밀스런 꿈도 심어야지 외롭다고 느낄 때마다 살짝 웃어보는 나를 어진 마음으로 받아주는 그 평범해 보이지만 아름다운 깊이로 나를 제자리에 앉히는 향기로운 나무책상을 하나 갖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