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terature(문학)/Poem(시)

이해인 시 모음 꽃(03)

2018. 3. 26. 11:04

 

 

 

 

할미꽃 / 이해인 

 

손자 손녀

너무 많이 사랑하다

허리가 많이 굽은

우리 할머니


할머니 무덤가에

봄마다

한 송이 할미꽃 피어

온종일 연도(煉禱)를

바치고 있네


하늘 한번 보지 않고

자주빛 옷고름으로

눈물 닦으며


지울 수 없는 슬픔을

땅 깊이 묻으며


생전의 우리 할머니처럼

오래 오래

혼자서 기도하고 싶어

혼자서 피었다

혼자서 사라지네


너무 많이 사랑해서

너무 많이 외로운

한숨 같은 할미꽃

 

 

 

 

 

 

 

찔레꽃 / 이해인

 

아프다 아프다 하고

아무리 외쳐도


괜찮다 괜찮다 하며

마구 꺽으려는 손길 때문에


나의 상처는

가시가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 남모르게

내가 쏟은

하얀 피

하얀 눈물

한데 모여

향기가 되었다고


사랑은 원래

아픈 것이라고

당신이 내게 말하는 순간


나의 삶은

누구라도 바꿀 수 없는 축복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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