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처럼 바다처럼
산을 좋아하는 친구야
초록의 나무들이
초록의 꿈 이야기를 솔솔 풀어 내는
산에 오를 때마다
나는 너에게 산을 주고 싶다
수많은 나무들을 키우며 묵묵한 산
한결같은 산처럼 참고 기다리는 마음을
우리 함께 새롭히자
바다를 좋아하는 친구야
밀물과 썰물이 때를 따라 움직이고
파도에 씻긴 조가비들이
사랑의 노래처럼 널려 있는
바다에 나갈 때마다
나는 너에게 바다를 주고 싶다
모든 것을 받아 안고 쏟아 낼 줄 아는 바다
바다처럼 넉넉하고 지혜로운 마음을
우리 함께 배워 가자
젊음 하나만으로도
나를 기쁘게 설레이게 하는
보고 싶은 친구야
선한 것, 진실한 것, 아름다운 것을
목말라하는 너를 그리며
나는 오늘도 기도한다
산의 깊은 마음과 바다의 어진 마음으로
나는 너를 사랑한다
겨울 산길에서
추억의 껍질 흩어진 겨울 산길에
촘촘히 들어앉은 은빛 바람이
피리 불고 있었네
새 소리 묻은 솔잎 향기 사이로
수없이 듣고 싶은 그대의 음성
얼굴은 아직 보이지 않았네
시린 두 손으로 햇볕을 끌어내려
새 봄의 속옷을 짜는
겨울의 지혜
찢어진 나목(裸木)의 가슴 한켠을
살짝 엿보다
무심코 잃어버린
오래 전의 나를 찾았네
이해인 시인
겨울길을 간다 / 이해인
겨울길을 간다
봄 여름 데리고
호화롭던 숲
가을과 함께
서서히 옷을 벗으면
텅 빈 해질녘에
겨울이 오는 소리
문득 창을 열면
흰 눈 덮인 오솔길
어둠은 더욱 깊고
아는 이 하나 없다
별 없는 겨울 숲을
혼자서 가니
먼 길에 목마른
가난의 행복
고운 별 하나
가슴에 묻고
겨울 숲길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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