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 / 이해인
해마다 부활하는
사랑의 진한 빛깔 진달래여
네 가느단 꽃술이 바람에 떠는 날
상처입은 나비의 눈매를 본 적이 있니
견딜 길 없는 그리움의 끝을 너는 보았니
봄마다 앓아 눕는
우리들의 지병은 사랑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다
한 점 흰구름 스쳐가는 나의 창가에
왜 사랑의 빛은 이토록 선연한가
모질게 먹은 마음도
해 아래 부서지는 꽃가루인데
물이 피 되어 흐르는가
오늘도 다시 피는
눈물의 진한 빛깔 진달래여
튤립을 닮은 동무 / 이해인
동무야
잘 있었니?
내가 슬프고 우울할 때
가장 환한 기쁨과
웃음의 불을 켜서
당겨주던 꽃
튤립을 닮은 나의 동무야
차를 마셔요, 우리 / 이해인
오래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싶거든
차를 마셔요, 우리
찻잔을 사이에 두고
우리 마음에 끓어오르는
담백한 물빛 이야기를
큰 소리로 고백하지 않아도
익어서 더욱
향기로운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함께 차를 마셔요
오래 기뻐하는 법을 배우고 싶거든
차를 마셔요, 우리
마음의 창을 활짝 열고
산을 닮은 어진 눈빛과
바다를 닮은 푸른 지혜로
치우침 없는 중용을 익히면서
언제나 은은한 미소를 지닐 수 있도록
함께 차를 마셔요
오래 참고 기다리는 법을 배우고 싶거든
차를 마셔요, 우리
뜻대로만 되지 않는 세상 일들
혼자서 만들어 내는 쓸쓸함
남이 만들어 준 근심과 상처들을
단숨에 잊을 순 없어도
노여움을 품지 않을 수 있는
용기를 배우며 함께 차를 마셔요
차를 마시는 것은
사랑을 마시는 것
기쁨을 마시는 것
기다림을 마시는 것이라고
다시 이야기하는 동안
우리가 서로의 눈빛에서 확인하는
고마운 행복이여
조용히 차를 마시는 동안
세월은 강으로 흐르고
조금씩 욕심을 버려서
더욱 맑아진 우리의 가슴속에선
어느 날 혼을 흔드는
아름다운 피리 소리가 들려올 테지요?
코스모스 / 이해인
몸달아
기다리다
피어오른 숨결
오시리라 믿었더니
오시리라 믿었더니
눈물로 무늬진
연분홍 옷고름
남겨 주신 노래는
아직도
맑은 이슬
뜨거운 그 말씀
재가 되겐 할 수 없어
곱게 머리 빗고
고개 숙이면
바람 부는
가을길
노을이 탄다
분꽃에게
사랑하는 이를 생각할 때마다
내가 누리는
조그만 천국
그 소박하고도 화려한
기쁨의 빛깔이네
붉고도 노란
아무도
눈여겨 보지 않는 땅에서도
태양과 노을을 받아 안고
그토록 고운 촛불
켜 들었구나
섣불리 말해 버릴 수 없는
속 깊은 지병(持病)
그 끝없는
그리움과 향기이네
다시 꽃피울
까만 씨알 하나
정성껏 익혀 둔 너처럼
나도 이젠
사랑하는 이를 위해
기도의 씨알 하나
깊이 품어야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