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아꽃 / 이해인
향기로 숲을 덮으며
흰 노래를 날리는
아카시아꽃
가시 돋친 가슴으로
몸살을 하면서도
꽃잎과 잎새는
그토록
부드럽게 피워 냈구나
내가 철이 없어
너무 많이 엎질러 놓은
젊은날의 그리움이
일제히 숲으로 들어가
꽃이 된 것만 같은
아카시아꽃
수국(水菊)을 보며 / 이해인
기도가 잘 안 되는
여름 오후
수국이 가득한 꽃밭에서
더위를 식히네
꽃잎마다
하늘이 보이고
구름이 흐르고
잎새마다
물 흐르는 소리
각박한 세상에도
서로 가까이 손 내밀며
원을 이루어 하나 되는 꽃
혼자서 여름을 앓던
내 안에도 오늘은
푸르디 푸른
한 다발의 희망이 피네
수국처럼 둥근 웃음
내 이웃들의 웃음이
꽃무더기로 쏟아지네
꽃망울 / 이해인
너를 향한 내 그리움의 꽃망울도
봄비에 젖어 터지려 한다
진달래처럼 아프게 부어오른
나의 꽃망울
이제는 울면서 조용히 터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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