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중반 임진왜란을 소재로 일본에서 출간된 ‘에혼 조선정벌기(繪本朝鮮征伐記)’ 속 이순신 장군의 삽화. 이순신이 수군절도사가 돼 거북선을 만들었으며, 충성스럽고 용맹했다는 등의 설명이 달렸다. 이상 제공
‘이순신은 13척의 선대를 지휘하여 조류를 이용해 포화를 퍼붓고 독전하여 스가 마사가케(管正蔭)는 전사하고….’(‘일본제국해상권력사강의’에서)일본 메이지 시대(1868∼1912) 해군이 임진왜란 때 자신들에겐 공포의 대상이었던 이순신(李舜臣) 장군에 관해 가르쳤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종각 상명대 특임교수(66·사진)가 최근 발간한 ‘일본인과 이순신’(이상)에 따르면 일본 해군 소좌 오가사와라 나가나리(小笠原長生)가 만든 자신의 해군대(해군 장교 교육기관) 강의 교재 ‘일본제국해상권력사강의’에서 이순신 장군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1902년 해군대가 처음 출간한 이 책은 24쪽에 걸쳐 임진왜란 역사를 다뤘다.
오가사와라는 이순신 장군에 대해 “담대하고 활달한 동시에 치밀한 수학적 두뇌도 갖추어 전선 제조법, 진열의 변화, 군략, 전술에 이르기까지 개량해 나갔다”라며 “진도에서는 조류를 응용(명량해전)하는 등 여러 가지 획책을 통해 매번 승리했기에 조선의 안정은 이 사람의 힘에 의한 것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일본 해군이 임진왜란의 수군 패배 원인을 연구해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하며 이순신 장군을 높이 평가했다.
이순신 장군을 존경한 일본인들은 이 밖에도 적지 않다. 1892년 조선에 측량기사로 왔던 세키 고세이(惜香生)는 전기 ‘조선 이순신전’을 펴내며 이순신 장군을 영국 해군 영웅 넬슨 제독에 견줬다. 일본 해군의 대표적 전략가인 사토 데쓰타로(佐藤鐵太郞·1866∼1942)는 ‘대일본해전사담’(1930년)에서 이순신을 “진실로 동서 해장(海將) 가운데 제1인자”라고 극찬했다.
이순신 장군이 생전 어떤 일본인과 접촉했고, 어떻게 대했는지도 이 책은 면밀히 살폈다. 대표적인 게 ‘항왜(降倭·임진왜란 당시 투항한 일본군)’다. 책에 따르면 ‘난중일기’에 이순신 장군이 항왜를 직접 문초하거나 만났다는 기록은 27건. 이순신 장군은 문제를 일으킨 항왜는 가차 없이 처형하는 반면, 항왜들이 향수를 달랠 전통극을 하고 싶다고 요청하면 흔쾌히 허락하는 관대한 모습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