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재권의 관상·풍수 이야기 60] ‘300년 동안 재벌’로 살 수 있는 비밀의 터
큰 재물, 큰 권력은 개인의 능력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혼자의 노력과 땀으로는 대통령에 당선될 수 없듯이 큰 부자도 마찬가지다. 누구에게나 필요한 돈이 어느 한 곳에만 집중적으로 모이는 데는 재능, 노력 외에 운(運)도 크게 따르기에 가능하다. 운칠기삼(運七技三)이 작용한다. 요즘 정치를 보면 '권세 10년 못 간다'는 권불10년(權不十年)이 실감나고, 한국의 대표적인 재벌들이 안팎으로 위기를 겪는 것을 보면 '부자 삼대 못 간다'는 부불3세(富不三世) 속설도 아직 유효한 것 같다. 위기 때 더 큰 비상을 이루기도 하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3대 유지도 힘든 만석(萬石)의 재물을 9대, 약 300년간 이어온 비밀의 터를 소개한다.
만석꾼은 요즘말로 재벌이다. 경주 교동의 최씨 가문이 9대에 걸쳐 만석꾼이 되고, 12대 진사를 배출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최진립(崔震立) 장군의 묘(墓) 힘이 압도적이었다고 본다. 최진립(1568-1636)은 1594년 무과에 급제했으며 병자호란 때 전투 중 순절(殉節)했다. 시호는 정무공(貞武公)이다. 최장군의 묘는 재물과 명예, 권력도 쥐는 부귀권(富貴權) 모두 이룰 수 있는 대명당(大明堂)이다. 매우 드물고 귀한 터다. 두서면과 경주에 있는 선영도 좋기에 어느 정도 권세와 부(富)를 얻을 수는 있으나 재벌이 될 역량은 못된다.
관상처럼 풍수도 동물을 명당에 대입해 해석하는 방식이 전해왔으며 물형(物形≒動物)풍수라 한다. 명당, 혈처를 동물의 특징과 결부시켜 해석하는 방법이다. "엎드린 소"의 와우형(臥牛形), "쥐가 밭으로 내려오는" 노서하전형(老鼠下田形), "금닭이 알을 품는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 등이다. 좋은 명당의 비하가 아니다. 인간은 자연계 생물의 한 종으로 시시각각 자연과 접촉하고 있기에 양자는 분리할 수 없다는 천지인 합일사상에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물형풍수로 최진립 장군의 묘를 해석할 수 있다. 명당의 전체적인 형국(形局)은 주마탈안형(走馬脫鞍形) 명당이다. 장군(將軍)이 출전을 앞두고 "말안장을 말 등에서 잠시 내려놓은 형국"이다. 이런 경우는 말과 말안장이 모두 있어야 명당의 조건이 성사된다. 말안장에 해당하는 곳이 혈처(穴處)이고 명당자리다. 산 중턱에 약간 펑퍼짐한 모양으로 된 곳이 말안장으로 최장군의 묘가 있는 지점이다. 최장군의 묘는 천마(天馬)라 불리는 말(馬) 형상으로 된 사(砂:산이나 물형)가 일품이다. 말 형상이 터 주위에 있으면 후손 중에서 귀한 인물이 태어나거나 생존하고 있는 인물이 고위직에 오른다고 해석한다. 말은 예나 지금이나 비싸고 귀한 동물로 아무나 소유할 수 없다. 즉 출세하고 귀한 존재로 대접받는 기운이 강하게 작용한다는 의미다.
최진립의 묘를 입구에서 볼 때는 천마로 된 귀한 명당이다. 반면 묘에서 볼 때 주산(主山)의 형상은 가마솥(釜)을 엎어 놓은 것처럼 생겼다. 이런 형상을 복부(伏釜)라 한다. 가마솥은 쌀이 많이 들어가는 대형 솥으로 큰 부자를 상징한다. 귀격(貴格)으로 생기면 일반 부자가 아닌 재벌급의 재물을 축적할 수 있다. 복부의 형상이 있는 명당에 거부가 안 된 터는 없다. 부산(釜山)이라는 지명(地名)이 온천이 난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으나 부산의 산 형상이 솥(釜)의 형상을 지녔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단순히 따뜻한 물이 나는 곳이 아닌 "큰 부자가 여기저기서 많이 나오는 지역이 부산"이라고 필자는 해석한다. 이렇듯 가마솥은 백석, 천석, 만석처럼 큰 재물을 상징한다.
최진립 장군의 묘가 명당인 것은 여러 곳에서 증명 가능하다. 명당 혈(穴)에 묘를 제대로 썼으며, 위성지도 상의 파란색 물(水)이 명당과 산을 감싸고 환포해 기(氣)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고 있기에 강기(剛氣)가 응축되고, 재물로 해석하는 물이 명당 묘 앞에서 모여 작은 못을 이루고 있다. 그 아래는 '가막 저수지'의 큰물이 사시사철 마르지 않고 가득 고여 있으니 재물도 마르지 않고 채워지게 된다. 녹색의 산줄기 상의 '귀봉'으로 표시된 지점의 산은 빼어나고 귀한 작용을 일으킨다. 앞에서 바람을 막아주고 물이 쉽게 빠져나가는 것도 방지한다. 이렇게 물이 나가는 수구(水口)에 빼어난(秀) 산이 있으면 필히 귀하거나 출세한다고 했다. 또한 나락을 쌓아 놓은 노적봉(露積峯)과도 닮았다. 노적봉은 거부(巨富)를 상징한다.
최진립의 묘는 쉽게 찾을 수 있는 명당은 아니다. 지관들을 동원해 오랜 시간 둘러본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산자(生者)는 모여 집성촌을 이루고 살아야 집안이 번성하고, 죽은 자(死者)는 뿔뿔이 흩어져 잠 들어야 가문(家門)이 번성한다". 명당의 힘은 지기(地氣)에서 나오기에 주변의 땅기운을 흡수한다. 명당이 멀리멀리 떨어져 드물게 존재하는 이유다. 우리나라 역대 명문가들의 선영은 거의 모두가 흩어져 있다. 세도가, 명문가 일수록 이런 특징은 뚜렷하다. 명문 최부자 가문도 죽은 자는 흩어져 있고 산자들은 교동에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최진립의 아들 최동량부터 본격적인 거부가 되고 손자인 최국선 대에 이르러 만석꾼의 대열에 올랐다. 만석지기 재벌이 된 원천으로 최부자집 99칸 집터를 거론하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의 방문과 견학도 대저택으로 향한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최장군 묘의 영향력이 막강했다고 본다. 9대 만석꾼과 300년 재벌의 불가사의한 비밀은 한적한 곳의 최진립장군의 묘에서 비롯됐다. 명당의 영향력은 집터, 사주팔자, 인맥을 능가한다.
[출처: 중앙일보]
'Etc.(기타) > History(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선 마지막 공주, 덕온공주 (0) | 2018.05.04 |
---|---|
400년 전 이순신 울린 길 (0) | 2018.04.19 |
이순신이 감탄한 꽃섬 (0) | 2018.04.02 |
제주 4ㆍ3 아픔 배어 눈물겨운 탐라의 봄 (0) | 2018.03.31 |
화순을 스쳐간 김삿갓, 조광조와 정율성 (0) | 2018.03.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