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에서 마속이 등장하는 ‘분량’은 많지 않다. 그러나 제갈량의 남만정벌 당시 ‘칠종칠금(七縱七擒)’과 관련한 제언과 ‘읍참마속’ 고사 등을 남기며 소설에서도 존재감이 분명한 인물 중 하나다. 마속은 적벽대전 이후 유비가 형주 지역을 지배하고 있을 때 뽑았던 인재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양양 지역에서도 재주 많기로 손꼽혔던 마(馬)씨 5형제 중 막내였다. 그의 형인 마량(馬良)이 다섯 형제 중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눈썹에 흰 터럭이 나 있어 ‘백미(白眉)’로 불렸다는 데서 ‘백미’라는 고사성어가 나온 것으로도 유명하다. 또 제갈량과 마량·마속 형제의 우정은 친형제 이상이었다고 할 만큼 각별했다. 마량이 오촉전쟁 당시 죽은 후 제갈량은 마속과 사사로운 대화도 나누며 아낀 것으로도 유명하다. 마속 역시 병법에 밝아 제갈량의 의논상대가 될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그는 가정전투의 실패 한 번으로 제갈량에 의해 처형당한다. 도대체 그는 어떻게 자기 자신을 위기로 몰고 간 것일까.
『삼국지』에는 제갈량이 마속을 처형한 후 목 놓아 울며 그치지 않는 장면이 나온다. 이에 마속의 처형을 말렸던 장완이 제갈량에게 스스로 참해놓고 우는 이유를 묻는다. 그러자 제갈량은 이렇게 대답한다.
“마속 때문이 아니라 지난날 선제의 말씀이 생각나서 그러오. 선제께서 백제성에서 유명을 달리하시기 전에 내게 ‘마속은 말이 실제를 넘어서니 크게 쓰지 말라’고 당부하셨는데 내 그 일을 잊고, 급한 마음에 어리석은 일을 저질렀으니 어찌 슬프지 않으리오. 선제의 영명하신 선견지명을 오늘에야 깨달으니 애통할 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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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참마속(泣斬馬謖)의 그 주인공
마속이 위기에 몰린 것은 바로 유비의 말에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마속은 그야말로 ‘검색’해보면 다 나오는 잡다한 백과사전식 지식을 머리에 잔뜩 담아 놓고선 자신이 꽤나 총명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부류의 ‘잡학다식(雜學多識)’형 지식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데 몸으로 익히지 않고 책으로 아는 지식은 실천적 상황이 벌어지면 무용지물이거나 오히려 자신을 위협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 ‘인간 네이버’라는 평을 듣는 똘똘한 사람들이 실전에선 무능하고 써먹을 데라고는 없는 허황한 경우가 많다. 마속은 이런 허황한 부류의 인간이라고 보는 이유는 이렇다.
먼저 그가 꽤 똘똘한 병법의 전문가처럼 나오는 일화가 바로 제갈량이 남만정벌에 나섰을 때 ‘칠종칠금’ 전략의 힌트를 얻는 것으로 나오는 마속의 제언이다. 남만평정의 지략을 묻는 제갈량의 질문에 마속은 “앞에서는 누르고 뒤에서 배반하는 전쟁을 피해야 한다”며 이렇게 제언한다. “무릇 마음을 공격하는 것이 상책이고, 성을 공격하는 것은 하책이며, 심전이 상책이고 병전이 하책입니다. (攻心爲上 攻城爲下 心戰爲上 兵戰爲下)”이에 제갈량은 “그대가 내 폐부를 꿰뚫어보는구려”라며 기뻐한다.
이 말은 이후에도 마속의 꽤 빛나는 명언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이는 병법을 공부한 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다. 한 예로 손자병법 ‘모공(謀攻)편’이 바로 이얘기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법을 설파한 모공편에선 최상의 전쟁방법으로 심리전을 제안한다. 병사를 써서 전쟁하는 것은 하책이라고 논한다. 이는 특별히 지략이 높아서가 아니라 평소 병법에 밝았던 마속으로서는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말이라는 거다.
마속이 허황한 지식인이었다는 사실을 제갈량이 몰랐던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미 유비가 말이 실제보다 앞서고 있는 그의 정체를 알았고, 이를 제갈량에게 알려주기도 했다. 또 마속을 가정으로 보낸 후 제갈량이 취했던 조치를 보면 그 역시 충분히 그의 허황함을 간파하고 있긴 했던 것 같다. 1차 북벌 당시 위군을 압박하자 사마의가 출정하고, 이 사실을 전해들은 제갈량은 가장 먼저 가정을 걱정한다. 이때 가정을 지키겠다고 나선 것이 마속이다. 제갈량은 마속을 가정으로 보내면서 신신 당부를 하고도 불안감에 휩싸인다. 그래서 가정 동북쪽 산골짜기에 있는 열류성에 장수 고상을 보낸다. 그러고도 안심을 못해 촉군의 맹장인 위연까지 가정의 배후 지역에 주둔토록 한다. 가정은 말 그대로 산골짜기에 있는 길목이다. 제갈량은 마속을 보내놓고는 이 길을 하나 지키자고 위연까지 빼냈을 정도로 마속에 대한 믿음은 크지 못했던 것이다.
가정에서 보여준 마속의 행태는 먹물만 든 ‘똑똑한 멍청이’들이 얼마나 일을 그르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마속은 그의 부장 왕평이 길목에 군영을 세워야 한다고 제안하자 이를 거절한다. 왕평은 글을 읽을 줄 모르는 무식한 무장이었지만 야전에서 잔뼈가 굵은 백전노장이었다. 실전에선 왕평의 대비책이 옳았다. 그러나 마속은 병법을 내세워 왕평의 기를 죽이고, 결국 산위에 기어 올라가 군영을 세운다. 왕평이 자신들의 임무는 길목을 지키는 것이라고 아무리 주장해도 마속은 꿈쩍도 않으며 병법을 들먹인다.
“병법에 이르기를 높은 곳에 의지해 아래를 보면 그 형세가 마치 대나무를 쪼개는 것과 같다고 했다”는 둥의 흰소리를 하며 끝내 산으로 기어 올라가버려 스스로 퇴로도 없는 곳에 고립돼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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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멍청이’들이 일을 그르친다
원래 세상 물정 제대로 모르고 책을 외우곤 안다고 생각하는 똑똑한 것들과 입씨름하는 것이 10만 대군을 맞아 싸우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실제로 학교 성적 좋고, 공부 잘 하고, 좋은 대학 나온 사람 중에 실전에 무능한 사람들을 찾는 건 쉽다. 온갖 지식을 줄줄 외는 사람 중에 생각이 깊고 문제해결능력을 갖춘 사람을 찾는 건 쉽지 않다.
책을 읽고 공부하는 것은 중요한 자질이다. 그러나 책으로 배우는 지식은 결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아니다.
소설 『삼국지』에 양의(楊儀)가 빈번하고 비중 있게 등장하는 것은 제갈량의 ‘북벌’이 시작되면서다. 그는 제갈량을 따라 종군하면서 군중의 군수품과 군량 조달 등을 도맡아 하고, 제갈량도 그에게 빈번히 의견을 묻는 등 실무 능력을 인정한다. 『촉서』양의전에 따르면, 제갈량이 여러 번 출병할 때마다 양의는 늘 계획을 짜서 부대를 편성하고 군량미를 계산했는데 생각할 것도 없이 짧은 시간에 처리했다고 기록한다. 그리고 제갈량은 양의의 재능을 매우 아꼈다는 것이다.
또 제갈량이 북벌 중 오장원에서 세상을 떠나기 전에 군사를 퇴각하는 것을 총지휘하는 일을 양의에게 맡긴다. 이로써 양의는 군사들을 모두 이끌고 한중으로 퇴각한다.
이 과정에서 상장군 위연과 대립하고, 위연은 양의의 철군 결정에 반발하면서 양측이 격돌한다. 원래부터 양의와 위연을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하고, 사이가 좋지 않아 제갈량 생전부터 애를 먹었다. 그러나 제갈량은 북벌을 위해선 양의의 실무능력이 필요했고, 위연의 용력이 전투에 필요했기에 둘을 중재하며 끌고 갔던 것이다. 그러나 제갈량이 죽자 이 두 사람은 브레이크도 없이 달려 나가 맞부딪친다. 이때 양의가 위연을 죽이고 제갈량의 영구를 모시고 성도로 돌아온다.
그리고 제갈량 사후 조정 인사가 개편되는데, 공명이 유언한대로 장완이 승상이 되고, 비의가 상서령이 되는 등 승진하고 양의는 예전 관직에 그대로 남는다. 이에 양의는 억울하다. 자신이 사투를 벌이며 위의 전선에서 군사들을 모두 안전하게 철수시켜 돌아온 공로가 큰데 보상받지 못한 억울함이 쌓인다.
또 양양 출신인 그는 형주에서부터 벼슬을 할 때, 장완보다 먼저 시작하고 급수도 높았었다. 그런데 장완이 승상이 되니 불만을 품게 되는 것이다. 이에 양의는 만나는 사람마다 붙들고 불평하기를, “벼슬을 지낸 햇수로 보아 내가 장완보다 먼저인데 어찌 그 밑에 있으며, 북벌에서 세운 공로가 적지 않은데 어찌 이리 박대하는가?”하니 모든 사람들이 그를 꺼리게 된다. 또 제갈량 사후 함께 한중으로 철군했던 동료 비의가 찾아가 위로하자 “승상이 돌아가셨을 때, 차라리 모든 군사를 이끌고 위에 투항했다면 내 지금처럼 적막했겠는가?”하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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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무능력이 뛰어난 ‘소인배’ 양의
이런 사례는 어느 조직에서나 볼 수 있는 일상적인 일이다. 자신의 공로와 능력에 합당한 보상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분개하고 불평하다 더욱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흔하다. 이런 사람들은 늘 비분강개하고, 본인에겐 평생이 분하다. 그러나 문제는 그의 분노에 아무도 동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행동하는 사람 곁에선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지긋지긋해 한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부풀려진 자신과 객관적인 자신의 현주소의 격차가 큰 경우다. 양의도 똑같은 길을 걸었다. 그건 그가 제대로 조직생활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먼저 실무능력과 리더십은 다르다. 특정한 분야에 탁월한 재능을 보이는 사람이 있다. 그에게 일을 맡기면 안심해도 된다. 양의는 군수물자와 식량을 조달하고, 적절하게 배분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제갈량도 인정해 그와 위연이 빚어내는 갈등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를 썼다.
그러나 제갈량은 죽으면서 자신의 뒤를 이을 후계자로는 장완과 비의를 추천한다. 양의를 추천한 것이 아니다. 양의의 쓰임새는 바로 그의 실무능력에 있었지 조직 전체를 총괄하고, 조정을 이끌어나가는 일은 아니었다.
실무능력이란 한 분야에 특화된 능력이다. 타고났을 수도 있고, 오랜 세월 동안 그 일에 숙련됨으로써 탁월해졌을 수도 있다. 일을 수월하게 하는 능력, 숙련된 기술과 같은 것이다. 그 분야 하나 잘 한다고 다른 일도 잘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는 자신이 북벌에서의 공로가 있으므로 벼슬도 높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만심과 욕심이 능력을 앞지른 것이다. 이렇게 높은 자리가 자신의 공로에 대한 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다. 그러나 조직에서의 자리란 공로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향후 그 조직을 이끌고 나갈 비전을 보여주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공로가 많아도 높은 자리에 앉고 싶다면 비전과 그 자리에 걸맞은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둘째, 조직 내에서 은원관계를 드러내놓고 갈등을 빚는 사람은 높이 올라가기 힘들다. 이런 사람들은 주변에 그의 인성에 대한 불안감을 준다. 대표적으로 위연과의 갈등이다. 어느 조직에서나 갈등을 빚는 사람들이 있다. 인간관계에 갈등이 없을 수 없다. 문제는 그 갈등을 어떻게 관리하는가이다. 그는 위연에 대한 혐오와 미움을 드러냈고, 갈등을 드러냈고, 이 때문에 제갈량까지 고민하게 했고 끝내는 위연의 식솔까지 모두 도륙을 냈을 정도로 깊은 증오심을 표현했다.
인간관계의 불화보다 나쁜 것은 이를 표현하고, 이 때문에 일에 지장을 받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더 높은 자리로 가는 경우는 흔치 않다. 높은 자리는 갈등을 관리하는 자리다. 그런데 자기 갈등도 관리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부하직원들의 갈등을 관리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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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 대한 과다한 환상이 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