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마음은 또 무엇인가요?
추위도 다가기 전 봄날
수줍은 듯 갸날프게 나무 가지가지마다
엷은 분홍으로 매달리던 벛꽃잎들이
이내 흰빛으로 탈색되어 바람을 타고 날리는 것도
다 이유가 있어서 일 것입니다.
깊은 산골 도랑에서 부터
밤세워 이룬 강물이 새벽녘에
물안개를 가득피워 시야를 가리며
강가의 풀잎에 맺힌 이슬을 더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어서 일 것입니다.
한여름밤 폭풍에 못이겨
길길이 치솟는 파도가 온 세상을 삼킬 듯
갯바위를 마구 때리다가
다음날 아침이면 시침을 뚝떼고 잔잔한 것도
다 이유가 있어서 일 것입니다.
가을날 온 산과 들을
오색 찬란하게 물들이며 저마다 뽐내던 단풍잎들이
이내 초라한 갈잎으로 변해 떨어져 딩굴다가
한모퉁이에서 썪어 가는 것도
다 이유가 있어서 일 것입니다
따뜻한 계절엔 비릿하도록 앙상하게 죽어 있다가
추운 겨울에만 늘어지도록 탐스럽고 아름답게 눈꽃을 피운
산 정상 고사목의 나뭇가지를
바람이 살포시 흔들어 떨구는 것도
다 이유가 있어서 일 것입니다.
그런데 또한 이렇듯 세상사는
다 이유가 있어 그러려니 하며
이내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너그러히 다 잊으면서도
돌아 올 수 없는 님을 굳이 애타게 그리워하며 방황하는
이 마음의 이유는 또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