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슬·유두래곤 안부럽네...경제학 교수님의 두 ‘부캐 인생’
‘인생 분산 투자자’ 서진수 교수
“이건 몽땅 미술책이에요. 서재는 에스페란토(Esperanto·국제어)를 위한 공간이고요. 전공인 경제학 서적은 학교 연구실 밖으로 못 나오게 합니다. 삶을 몇 조각으로 쪼개려면 공간도 딱 분리해서 서로 영역을 침범하지 못하게 해야 해요.”
마포 자택에서 만난 서진수(64) 강남대 경제학과 교수가 집 안 구석구석을 설명해줬다. 거실엔 20년 모은 도록이, 녹색 에스페란토기(旗)를 붙인 서재엔 50년 모은 에스페란토 관련 자료가 꽂혀 있었다.
본업은 경제학 교수. 연구실 문을 나서면 미술 시장 전문가, 에스페란토 전문가로 산다. 요즘 말로 ‘부캐(부캐릭터·원래 모습 아닌 다른 캐릭터)’가 하나도 아니고 둘이다. 이런 삶이 어떻게 가능할까.
"인생은 색다르게! 비빔밥 인생, 신납니다." 에스페란토 서적(왼쪽)과 미술 시장 관련 자료 사이로 포즈를 잡은 서진수 강남대 교수. 경제학자지만 에스페란토 전문가, 미술 시장 전문가 두 '부캐'를 가지고 산다.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인생도 분산 투자
—여러 삶을 동시에 사는 게 가능한가요?
“유행어로 하면 ‘부캐’지만 경제학 용어로 말하면 인생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포트폴리오를 분산 투자한 겁니다. 월급 또박또박 주는 데가 메인이니 일주일 중 사나흘은 경제학 교수의 삶에 충실합니다. 이틀은 미술 시장, 하루는 에스페란토, 또 하루는 가정에 집중합니다. 학교 연구실 문에 붙여놓은 네 글자가 있어요. ‘색다르게.’ 인생 모토랍니다. 한 가지 색깔로 쭉 사는 것, 재미없잖아요?”
—일상을 분리하는 게 쉽지 않을 듯한데요.
“교수들이 문에 ‘재실(在室), 강의, 회의, 외출, 식사’ 등 일정을 표시해 두죠. 인생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간과 장소에 따라 자기 지위를 바꿔야 해요.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가장 세다고 생각하는 지위에 맞춰 인생을 살아요. 교수는 학교에서 끝이어야지, 밖에서도 교수, 집에서도 교수로 살려고 해요. 저는 다른 세 삶을 선택했고, 거기 맞춰 시·공간을 딱 구분합니다.”
—한 우물 파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마다 타고난 손금도, 재주도, 입맛도, 사는 방법도 다 달라요. 나는 세상사에 관심 많고, 밥도 여러 가지 반찬 넣고 신의 한 수 참기름 친 비빔밥이 좋습니다. 경제학, 에스페란토, 미술 시장이 내 비빔밥에 넣을 비장의 참기름이 돼요. 예컨대 미술 시장 설명할 때 에스페란토 억양 섞어 재밌게 ‘개콘’처럼 설명해주는 식이죠.”
—본업에 불충실하다는 얘기를 듣진 않나요.
“그 시간에 할애한 일을 할 땐 그 일만 열심히 하자가 철칙이에요. 강의하는 날은 아침부터 밤 10시 야간 수업까지 풀로 해요. 결혼도 이번 생은 집사람 하나에게만 올인한다는 생각으로 임했습니다. 그러니 하고 싶은 거 맘껏 하고 돌아다녀도 눈감아주는 것 아닐까요. 파뇨, 맞지?” 파뇨(Panjo)는 에스페란토로 ‘엄마’라는 뜻. 그가 아내를 부르는 애칭이다. 곁에 있던 아내가 못 말리겠다는 표정으로 피식 웃었다.
서 교수는 “쉰에 유서를 써서 미리 아내, 자식한테 줬다”고 했다. 서문은 이렇게 시작한단다. “평생 제 뜻대로 살다가 간 사람이니 슬퍼하지 마라.”
에스페란토 상징 기를 벽에 붙인 서재에서 서진수 교수가 줌으로 에스페란토 협회 회원들과 대화하고 있다.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내 특기? 샛길로 빠지기
전남 화순에서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때 서울에서 대학 다니던 둘째 형을 따라 상경했다. “형은 일찍 돌아간 아버지를 대신한 존재이자 본보기 겸 최대 경쟁자”라며 “경제학과 교수인데 딴짓하는 것도 똑같다”고 했다. 둘째 형인 서길수(76) 전 서경대 경제학과 교수는 손꼽히는 고구려 연구 권위자다.
에스페란토도 형 영향을 받아 1969년 중학교 1학년 때 시작했다. 에스페란토는 1887년 폴란드 안과 의사 자멘호프 박사가 창안한 국제어. 서 교수는 작년부터 한국에스페란토협회 회장과 세계에스페란토협회 임원을 맡았다.
작년 핀란드에서 열린 세계 에스페란토 대회에 참석한 모습.
—에스페란토는 죽은 언어라고들 하는데요.
“국내에 에스페란토 하는 사람이 5000명 정도 있어요. 매년 전 세계 에스페란토 대회도 열려요. 올해 한국에스페란토협회가 100주년을 맞았는데 코로나 때문에 ‘줌’으로 며칠 전 행사를 했어요.”
그는 “요즘 국제 에스페란토계에선 ‘코레아이 시뇨리노이(Koreaj sinjorinoj)’, 번역하자면 ‘한국 줌마들’이 신바람 넣고 있다”고 했다. “고학력 베이비붐 세대 주부 중에 취미로 배우는 사람이 꽤 있어요. 한국 회원이 재작년 포르투갈 세계 대회에선 50명(전체 1525명), 작년 핀란드 대회 땐 30명(전체 855명) 참석했는데, 70~80%가 중년 여성이었어요. 특유의 친화력으로 어찌나 열성적으로 배우는지, 외국 사람들이 깜짝 놀라더라고요.”
서 교수의 또 다른 직함은 미술 시장 전문가. 경매와 아트 페어를 돌아다니면서 미술 작품의 가격 변동을 추적한다. 2002년 ‘미술시장연구소’라는 이름을 걸고 이 일을 시작했다. “연구원 겸 소장 겸 자료실장 겸 청소부 서진수. 카메라, 노트북, 수첩 들고 어디든 가는 유비쿼터스 1인 연구소예요!” 왕년 꿈이 코미디언이었다는 그가 속사포처럼 말했다.
—미술계에서도 괴짜로 통한다고요.
“처음엔 화랑 사람들이 ‘저 사람은 뭔데 자꾸 와서 쓸데없이 그림 가격만 묻고 안 사느냐’고 수군댔대요. 그때 속으로 생각했어요. 10년 데이터 쌓으면 내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거라고. 결국 20년 가까이 국내 경매는 거의 다 가서 시작가부터 낙찰가까지 빠짐없이 기록했어요. 작품 안 사면서 경매 시작부터 끝까지 앉아 있는 사람은 저밖에 없을걸요(웃음).”
—미술 시장이라는 샛길로는 어떻게 빠진 건가요.
“전공이 경제학사, 그중에서도 고전경제학 이론 중 경제 공황입니다. 재미 없는 것만 모아뒀죠. 게다가 박사 땄던 1980년대 후반은 고도 성장기여서 주목받지도 못했어요. 그런데 1998년 IMF(국제통화기금)에서 구제 금융 받으며 처음으로 한국이 경제 공황을 겪게 됐어요. 자료가 턱없이 부족해 에스페란토 활동 하면서 알게 된 도쿄대 경제학과 교수 통해 2주 동안 도쿄대 도서관에 가서 관련 서적을 뒤졌습니다. 그러다 서점에서 ‘문화경제론’이라는 책을 우연히 봤습니다. 당시만 해도 한국엔 낯선 개념이었는데 방송, 출판, 게임 등 문화를 경제적으로 분석한 책이었습니다. 앞으로 문화가 경제를 움직일 거라고 직감했습니다.”
137번 떠난 해외여행 경험도 선택을 뒷받침했다.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 이하 후진국에선 정치인들이 기업가, 예술가를 시녀로 삼더군요. 1만~3만달러 중진국은 ‘돈’이라는 신을 숭배하고요. 3만달러 이상 선진국은 집에 그림, 사진, 판화를 한 점이라도 걸어 놓더군요. ‘1만달러 이하는 정치, 1만~3만달러는 경제, 3만달러 이상은 문화’라는 제 나름의 경제 발전 단계설이 나왔어요. 앞으로 문화가 중요할 거라고 확신했습니다.”
2015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 프리뷰에 참석한 모습. 봉급의 3분의 1을 부어 미술 시장을 공부했다.
◇‘부캐’로 은퇴 후 준비해야
—금전적 여유가 있었으니 다양한 삶이 가능했던 것 아닐까요.
“사실 때 되면 봉급 들어오는 직장이 있기에 가능했지요. 그래도 술, 담배, 골프 전혀 안 하고 바지런히 모아 봉급의 3분의 1을 미술 시장 공부하는 데 썼어요.”
취미로 시작한 일로 이젠 돈도 번다. 미술 시장 관련 강의 요청이 많다. “강의 문의 오면 정확히 말합니다. 미술품에 호당 가격이 있듯 제 특강에도 시간당 가격이 있다고. 경기가 보통일 땐 시간당 500달러, 좋을 땐 500유로, 아주 좋을 땐 500파운드, 불경기 땐 고통 분담 차원에서 평균 가격 절반이라고 합니다(웃음).”
—‘괴짜다, 깊이가 얕은 거 아니냐’는 주위 시선은 안 두렵습니까.
“저는 남 욕할 시간에 차라리 자기 자랑을 하라고 해요. 제 호(號)가 ‘자뻑’이에요. 나만 잘하고 행복하면 세상은 저절로 잘 돌아간다는 게 지론입니다. 나나 잘하자!”
—‘부캐’를 꿈꾸는 이들에게 조언한다면.
“제가 만들어낸 인생 공식이 있습니다. ‘L(Life·인생)=L1(Labor·노동)+L2(Leisure·여가)’. 즉 우리 삶은 노동과 여가를 합한 겁니다. 한창 일할 땐 여가의 중요성을 잊고 살아요. 정작 퇴직해선 여가 거리만 찾지 일할 거리를 못 찾아요. 준비를 안 했으니. ‘부캐’를 만들어 젊을 땐 다양하게 쉬는 방법을, 퇴직해선 제2의 직업 찾아 노동하는 기쁨을 누려 보세요.”
[출처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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