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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의 편두통

2020. 5. 4. 11:32

선조의 편두통[이상곤의 실록한의학]〈92〉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조선왕조실록을 뒤지다 보면 선조만큼 침을 많이 맞은 임금도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그를 괴롭힌 편두통에는 꼭 침이 사용됐다. 실록의 기록들을 보면 그가 얼마만큼 두통에 시달렸고 침에 의존했는지를 알 수 있다. ‘선조가 고질병인 두통이 요즘 덜하나 침이 없으면 지탱하기 힘들 듯하다고 하자 재상인 유성룡은 침은 사(瀉)만 있고 보(補)하는 것은 없으니 여러 번 맞지 않아야 한다고 말렸다.’(선조 28년) ‘병의 고통으로 잠시도 견딜 수가 없어 하루를 넘기기가 마치 높은 산을 넘어가는 것 같으며 두통을 앓지 않는 때가 없다.’(선조 29년)

하지만 선조를 괴롭혔던 편두통은 조선 최고의 어의들에 의해 씻은 듯이 낫게 된다. 진단은 허준이 하고, 침 자리는 남영이 잡았으며, 자침은 허임이 담당했다. 조선제일침이라고 일컬어지는 허임의 보사(補瀉)침법은 당대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배우러 올 정도로 독톡했다. 선조는 자신의 편두통을 치료한 의관들을 특진시키는 등 크게 보상했다.

실록은 이 시기부터 치료에 참가한 의관들에 대한 비판을 쏟아낸다. ‘허임, 남영은 모두 6∼7품 관원으로서 하찮은 수고를 빌미 삼아 갑자기 당상관으로 승진했으나 분수를 뛰어넘은 행동이 극에 달하였다.’ ‘남영은 어미를 위한 귀성을 공무로 인한 파견이라며 뻔뻔스레 소장을 올렸으니 파직시키소서.’


편두통은 올리버 색스가 ‘편두통’이라는 책에 썼듯 ‘뚜렷한 절망과 은밀한 위로밖에 없는 신체적이며 정서적인 질환’이다. 과연 한쪽 머리만 아프면 모두 편두통일까. 국제두통학회는 ‘4∼72시간 지속되는 통증, 맥박이 뛰는 듯한 불쾌감, 메스꺼움, 어지럼, 구토, 밝은 곳이 싫거나 시끄러운 소리가 싫은 청각 과민 증상을 동반’할 때 편두통으로 진단한다.

독일의 생리학자이자 편두통 전문가인 뒤부아레이몽은 편두통을 적백으로 나눴는데, 이는 한의학이 체질에 따라 허(虛)와 실(實)의 증상으로 구분한 것과 비슷했다. 화를 잘 내고 얼굴이 붉어지는 적색 편두통(實)과 얼굴이 창백해지고 의기소침해지며 위장을 지배하는 미주신경 항진증 증상이 생기는 백색 편두통(虛)이 그것이다. 선조는 이명, 어지럼, 소화불량 증상을 자주 호소했는데, 이는 백색 편두통의 유형이었다.

선조의 편두통은 일생 내내 격화된 당쟁이 화근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의주에서 쓴 선조의 시는 편두통의 원인을 보여준다. ‘관산에 뜬 달 보며 통곡하노라.…이날 이후에도 동인이니 서인이니 나뉘어 싸움을 계속할 것인가.’

편두통은 중국의 전설적 명의 화타의 목숨을 빼앗기도 했다. 극심한 편두통에 시달리던 조조에게 “날카로운 도끼로 두골(頭骨)을 쪼개고 뇌수를 꺼내어 풍연(風涎)을 씻어버리면 깨끗이 나을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치료법을 말했다가 죽임을 당한 것.

동의보감에도 편두통에 도움이 되는 섭생이 나온다. 결명자나 녹두를 베개로 만들어 베거나, 그 가루를 물에 개 눈 옆 태양혈 근처에 붙이면 도움이 된다고 적혀 있다. 봄에 먹는 방풍나물도 편두통 개선에 좋은데, 죽을 끓여 먹거나 데쳐 먹어야 한다. 방풍(防風)은 바람을 막는다는 뜻으로, 이때 바람은 풍연, 즉 중풍과 같은 풍병(風病)을 뜻한다. 따라서 방풍의 의미는 풍병을 막는다는 의미인 셈이다.

 

[출처 ; 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