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타마 싯다르타는 출생 1주일 만에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이모인 마하파자파티 고타미가 그를 키웠습니다. 고대 인도사회의 전통에 따라 이모가 새엄마가 됐습니다. 싯다르타는 이모의 젖을 먹으며 자랐습니다. 철이 들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나를 낳으며 엄마가 죽었다’‘나로 인해 엄마가 죽었다’며 싯다르타는 자책감을 느끼지 않았을까요. 그렇게 가슴 한쪽에 구멍이 ‘뻥’ 뚫린 채 싯다르타는 유년을 보내지 않았을까요.
그래서인지 싯다르타는 어릴 적부터 남달랐습니다.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눈이 각별했습니다. 하루는 성 밖으로 농경제를 지내러 나갔다가 잠부나무 아래로 갔습니다. 거기서 농부가 밭을 갈다 나타난 벌레, 어느새 날아와 그 벌레를 쪼아먹는 새를 보았습니다. 싯다르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연에도 삶과 죽음이 있었으니까요. 그 광경을 바라보며 싯타르타는 ‘인간의 삶, 인간의 죽음’을 사유했습니다. 이러한 사유의 힘, 그 바탕에는 엄마의 부재로 인한 크나큰 결핍감이 깔려 있지 않았을까요.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자란 예수
성경에는 예수가 동정녀 마리아로부터 태어났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와 “곧 잉태를 할 것이다. 아기 이름을 ‘예수’라고 지어라”라고 일러주었거든요. 어쨌든 목수였던 요셉은 그의 친아버지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유대 사회의 관습에 따르자면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낳은 여자는 돌로 때려죽였습니다. 가문의 수치로 여겼으니까요. 가족의 손으로 돌로 때려죽임으로써 가문의 명예가 회복된다고 믿었습니다.
게다가 동네 사람들 누구도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로 보지 않았습니다. 처녀의 몸에서 태어난 ‘동정녀의 아들’로 보지도 않았습니다. 훗날 성인이 된 예수가 고향 동네인 나자렛을 찾아가 회당에서 가르침을 펼칠 때 사람들은 오히려 무시했습니다. “아니, 저 아이는 마리아의 아들이잖아. 예수의 형제도 우리가 알고, 예수의 누이도 우리가 알지 않나”라며 깔보았습니다.
저는 성경을 읽다가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자라난 예수를 읽습니다. 싯다르타가 ‘어머니의 부재’ 속에서 자라난 것처럼 말입니다. 유년기의 예수, 그 역시 커다란 결핍 속에서 자라지 않았을까요.
공자, 70세 아버지와 16세의 어머니
공자의 아버지 공흘은 노나라 하급 무관이었습니다. 아내도 있고, 자식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딸은 여럿이었으나 아들은 딱 하나였습니다. 그 아들이 너무 부실했습니다. 혼란한 춘추전국시대에 대가 끊길까 봐 우려하던 70세의 공흘은 마침내 16세 처녀 안징재를 맞아들였습니다. 나이 차이만 54세였습니다. 얼마 후에 안징재는 공자를 낳았습니다. 공자가 세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스물네 살 때는 홀어머니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동북아 문명에서는 아버지를 하늘에, 어머니를 땅에 비유합니다. 그러니 공자는 세 살 때 하늘을 여의었습니다. 그리고 스물네 살 때는 땅마저 여의었습니다. 그런 커다란 결핍을 안고 자라났습니다. 공자에게도 세상을 바라보는 ‘깊은 눈’이 있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늘의 부재를 통해 하늘을 바라보고, 땅의 부재를 통해 땅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시선이 공자의 사유를 키우지 않았을까요. 늘 효(孝)를 강조한 공자였지만 정작 자신은 뼈에 사무치는 아쉬움 속에서 자랐습니다.
유복자로 태어난 무함마드
싯다르타와 공자는 거의 동시대 인물이었습니다. 기원전 2500년경에 살았습니다. 예수는 그로부터 500년 뒤에 태어났습니다. 이슬람교를 창시한 무함마드는 예수보다 약 600년 후의 인물입니다. 무함마드는 유복자였습니다. 그가 태어나기 몇 주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남편을 잃은 슬픔과 절망 속에서 어머니는 무함마드를 낳았습니다.
여섯 살 때는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부모를 모두 잃은 무함마드는 할아버지 집에 맡겨졌습니다. 그런데 여덟 살 때 할아버지 또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숙부의 집에서 컸습니다. 상인이었던 숙부를 따라 험난한 사막을 횡단하며 자랐습니다. 무함마드의 유년기도 힘겨움의 연속이었습니다.
불교와 유교,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의 창시자가 모두 ‘절반의 결핍’을 안고 자랐습니다. 이게 과연 우연일까요. 어쩌다 발생한 일에 불과한 걸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어려서부터, 혹은 날 때부터 감당해야 했던 ‘거대한 결핍’이 이들로 하여금 삶의 근원, 인생의 바닥을 깊이 사유하게 했던 겁니다. 그러한 결핍이 이들에게는 커다란 목마름으로 작용했으리라 봅니다.
이쯤 되면 사람들이 따집니다. “그럼 종교적 깨달음을 위해서는 ‘힘겨운 유년기’‘부모의 부재’가 필연적 조건인가?” 아닙니다. 핵심은 아버지에 대한 결핍이나, 어머니에 대한 상실감이 아닙니다. 아버지 혹은 어머니에 대한 결핍을 통해 이들이 어릴 적부터 던졌을 ‘인간의 삶, 인간의 죽음’에 대한 물음이 핵심입니다. 저는 그 물음이 이들을 키웠으리라 봅니다.
가만히 살펴보세요. 싯다르타와 공자, 예수와 무함마드의 삶에는 예외 없이 ‘고통과 번뇌’라는 덩어리가 있었습니다. 그것도 어린 시절부터 말입니다. 저는 고통과 번뇌의 덩어리가 ‘삶의 중요한 재료’라고 봅니다. 왜냐고요? 번뇌의 덩어리는 일종의 엉킨 실 뭉치입니다. 크고 작은 온갖 문제가 마구 엉켜있는 실 뭉치. 그게 ‘번뇌’라는 이름의 덩어리입니다.
그래서 다들 싫어합니다. 피하려 합니다. 번뇌에서 도망치려 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따져 보세요.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삶의 문제’를 피할 수는 없습니다. 부처와 공자, 예수도 피하지 못한 ‘삶의 문제’를 과연 누가 피할 수 있을까요. 다시 따져보세요. 그러한 삶의 문제가 없다면 과연 우리가 ‘삶의 답’을 찾을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문제가 있어야 답이 있습니다. 문제가 없다면 답도 없습니다. 그러니 ‘삶의 문제’가 있어야 ‘삶의 답’도 알 수 있습니다.
번뇌의 덩어리는 엉킨 실 뭉치입니다. 그걸 한 올씩, 또 한 올씩 풀면서 우리는 이치를 터득합니다. 그와 함께 눈이 열리고, 지혜도 성장합니다. 그런 지혜의 힘이 쌓이고 쌓여서 우리의 삶을 자유롭게 만듭니다. 주위를 둘러보세요. 더 많은 번뇌를 풀었던 사람이 더 지혜롭습니다. 더 큰 고통을 이겨낸 사람이 더 강합니다. 더 깊은 아픔을 지나온 사람의 시선이 더 깊습니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었던 중국의 육조 혜능 대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번뇌가 곧 보리(菩提ㆍ지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