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c.(기타)/History of man (인물사)

박상영 소설가

2019. 3. 31. 14:34

몸 안 사리고 쓸 겁니다.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얘기

  •  


젊은작가상 대상 박상영 소설가

2016년 등단 지난해 젊은작가상
올해 1월 젊은작가상 대상 수상
첫 소설집, 7개월 만에 7쇄 준비 중
‘떠오르는 신예’ ‘퀴어문학 기대주’

“고향에서 탈출 못하면 끝난다 생각”
고3 때 ‘외딴방’ 읽으며 소설가 꿈
몇년 동안 공모전 모조리 떨어져
“저답게 써봤더니 거짓말처럼 붙어”

소설 ‘우럭 한점 우주의 맛’으로 올해 젊은작가상 대상을 받은 박상영 작가가 지난 21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주변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소설 ‘우럭 한점 우주의 맛’으로 올해 젊은작가상 대상을 받은 박상영 작가가 지난 21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주변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한동안 어떤 책에 반한 적이 있었다.

어쩌다 소소하게 책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 책에 반했다고 말했다. 도대체 어떤 내용이길래, 하고 사람들이 궁금해하면 아직 안 읽었다고 대답하며 그들을 어처구니없게 만들었다.

그냥 예쁘게 생겨서 그 책을 좋아했다. 돌과 모래 외에 아무것도 없는 황망한 땅 위에 선명한 오렌지색 우주복을 입고 서 있는, ‘망했네’라고 생각하면서도 웃고 있을 것만 같은 어떤 사람의 뒷모습과 신기한 제목. 이게 무슨 말이지, 하고 얼굴 가까이 책을 끌어당겨 오면 보이는, 글자를 덮고 있는 근사한 구릿빛 박.

박상영 작가(32)의 첫 소설집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2018)는 내 작은 책방에서도 단연 잘 보이는 자리에 놓이던 책이었다. 나의 외모지상주의적 차별로 인하여 책방 안에서 사회적 약자, 아니 ‘약서’(弱書)가 생기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늘 생각하지만, 그런데도 그 책 앞에서는 책방 주인장으로서의 형평성이 늘 흔들렸다는 것을 고백해야겠다. 고백한 김에 하나 더 고백을 해보자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책을 읽는 데는 계속 실패해왔다. 책방에서 매일 입고되는 책을 정리하고 이메일에 답장을 보내는 등의 기본적 업무들, 장강명 작가와 함께하는 도서 팟캐스트, 추천사 의뢰 같은 것들 때문에 읽어야만 하는 책들을 읽는 데 급급해 자꾸만 뒷전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언젠가 내가 꼭 읽을 거니까’라는 안일한 생각에서 오는 느긋함도 한몫했던 것 같다.

박상영 작가의 첫 소설집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박상영 작가의 첫 소설집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아무튼 그런 상태로 조금씩 잊히고 있었던 이 책을 다시금 깜짝 놀라 허겁지겁 독파하게 된 것은 지난 2월 한겨레 이에스시(ESC) 섹션에서 발견한 새 연재 에세이 때문이었다.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라는 제목의 에세이 속 주인공은 직장 생활의 극심한 스트레스를 야식이라는 방법으로 해결하려 한 나머지 다이어트라는 또 다른 스트레스를 불러오는, 그런 가운데에서도 매일같이 새벽부터 카페에 나와 출근 전까지 소설을 쓰는, 나태하지만 동시에 무섭게 성실해서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이상한 사람이 쓴 책은 놀랍게도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였다.

박상영 작가와의 인터뷰를 약속한 지난 21일 아침, 나는 커피를 내려서 여느 때처럼 바닥에 앉아 따끈따끈한 오늘치 신문을 펼쳐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네번째 편을 읽었다. 스무살 때 최초로 다이어트를 시작한 이래 거듭된 실패로 ‘다이어트를 결심하는 순간마다 인생 최고 몸무게가 되고 만다’는 진리를 깨달았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 신문을 다시 곱게 접어 챙겨서 인터뷰 장소인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근처의 한 카페로 나갔다. 신문을 주섬주섬 펼쳐 에세이가 인쇄된 지면을 오늘의 주인공, 박상영 작가에게 내밀었다.

“오, 이렇게 종이 신문에 인쇄된 것으로는 처음 봐요!”

나태하지만, 동시에 무섭게 성실한 사람

―선물입니다. 정말 재미있게 잘 읽고 있어요. 에세이 연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언젠가 에세이로 써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소재였어요. 대학교 다닐 때만 해도 정상 체중의 범주였거든요. 그러다가 일하고 소설 쓰고 다시 일하고 하면서 이렇게 제 인생 최고의 몸무게가 됐어요. 지금 100㎏이니까 6년 사이 30㎏이나 쪄버렸네요. 언젠가 날 잡아서 빼겠다고 다짐도 여러번 했고 어릴 때는 좀 빠지기도 했거든요. 근데 나이가 들수록 녹록지가 않더라고요. 이제는 며칠을 굶어도, 심지어 장염을 앓아도 몸무게가 꿈쩍도 안 해요. 그러던 중에 <한겨레>에서 연재 제의가 왔고, 다이어트에 대해서 쓰고 싶다고 말씀드렸죠. 잘 쓸 수 있다고, 그 어떤 작가보다도.”

‘중국산 모조 비아그라와 제제, 어디에도 고이지 못하는 소변에 대한 짧은 농담’ ‘패리스 힐튼을 찾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조의 방’ ‘햄릿 어떠세요?’ ‘세라믹’ 이렇게 단편 7편이 실린 박상영 작가의 소설집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속에서는 불나방처럼 사랑에 모든 걸 헌신하는 성노동자 게이, 발기부전에 시달리는 섹스중독자, 흥청망청 돈을 쓰며 인스타그램에 자신을 과시하기 바쁜 여자, 여자친구 몰래 원나이트를 즐기는 남자, 공허한 포부만 거창한 별 볼 일 없는 영화감독, 성도착증 환자 등 ‘실패’가 확실해 보이는 여러 인물이 보란 듯이 실패에 멋지게 성공한다. ‘한국 문학의 떠오르는 신예’ ‘퀴어문학의 계보를 이을 기대주’ 등의 찬사를 들으며 그의 첫 소설집은 지난해 9월 발매 뒤 현재 7쇄를 준비 중이다.

등단 뒤에도 계속 회사 다니며
매일 새벽 5시에 나와 글 쓰고
출근하는 악착같은 이중생활
몇달 전 퇴사하고 전업작가로

―그나저나 정말 새벽부터 출근 전까지 글 쓰는 생활을 해오셨던 거예요?

“네, 새벽 4시쯤 일어나서 씻고 5시쯤 나와서 회사 근처 오픈한 카페에 가서 글을 쓰기 시작해서 아침 8시55분까지 쓰다가 노트북 딱 닫고 올라가서 일 시작하고. 등단하고 나서 3년 정도는 그렇게 살았죠.”

마치 미국인처럼 아침 9시 정각에 출근하고 오후 6시가 되면 지체 없이 퇴근한다고 해서 회사에서는 박상영 작가를 ‘마이클’이라는, 누가 봐도 비난의 의도가 분명한 별명으로 불렀다고 한다. 악착같이 이중생활을 지키기 위해 지구상에 현존하는 거의 모든 영양제를 섭취해가며 버텼다는 그는 퇴사하고 이제 막 ‘전업작가’가 된 참이다.

“새벽같이 글 쓰며 직장 다녔던 것은 대단한 의지가 있었다기보다 일단은 돈이 없었어요. 그래서 회사에 다녔어야만 했고. 그리고 아직 선택받아야만 하는 신인 소설가의 입장이다 보니 들어오는 일을 다 받아서 어떻게든 소화하고 싶었어요. 그러다 지금 건강이 심각하게 안 좋아졌어요. 마침 제 책으로 출판사가 손익분기점을 넘기기도 했고.(웃음) 일단 입에 풀칠은 하고 살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런 마음으로 과감하게 퇴사하고 전업작가에 도전한 지 이제 몇달 되었습니다.”

―작가가 되겠다는 결심은 언제 하셨나요?

“대구 출신인데 고3 때인 2006년에 서울에 올라와서 수시 대비 공부를 했어요. 우리 때는 수시 원서를 100개도 낼 수 있었어요. 서울에 있는 모든 대학교에 원서를 다 쓰고, 원서비만 수백만원 들었어요.(웃음) 제가 살던 동네를 벗어나고 싶었거든요. 여기서 탈출 못 하면 내 인생은 끝난다고 생각했어요. 수시 공부 하면서 서울에 친구도 없고 학원 끝나면 시간도 많고 하니까 책을 주로 읽었거든요. 그때 신경숙 작가님의 <외딴방>이라는 소설을 필독서처럼 읽었어요. 아주 처연한 일기처럼 쓴 그 책이 마침 불행에 취해 있던 저와 너무 잘 맞았던 거죠. 이런 게 소설이라면 소설 쓰는 거 정말 근사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대학 들어가자마자 교지 편집부 들어가고, 소설 써서 교내 문학상도 받았고. 저는 제가 되게 잘 쓰는 애인 줄 알았어요, 그때만 해도.”

대학 졸업 때까지 여러 공모전에 도전해보았지만 작가의 꿈을 이루는 데 실패한 박상영 작가는 졸업하고 바로 잡지사에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그 생활은 “군대를 두번 연장한 듯한” 느낌이었다고 한다. 온갖 인신공격과 가스라이팅(타인의 심리를 조작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들어 지배력을 강화하는 것)에 시달리는 직장 생활 속에서 그는 소설가에 대한 꿈으로 다시 복귀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대학원에 진학해 다시 문학을 전공하면서 작가에 또 도전했고, 또 실패했다.

“신문사, 출판사 가리지 않고 모든 공모전에 다 냈는데 다 떨어졌어요. 한 3년 동안 하니까 사람이 점점 고장이 났죠. 결국 다시 직장에 다니기 시작했어요. 대체 문제가 뭘까 했는데 친구들이 제 말투는 재미있는데 글은 너무 진지해서 재미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정말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저답게 써봤어요. 제일 편한 화법으로, 제일 편안한 방식으로. 내가 소설을 처음에 쓰기로 했을 때 말하고 싶었던 감정을 다 써보자고. 후련하게 제 식대로 쓰고 보니 이제 공모에 떨어져도 미련도 안 남을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거짓말처럼 된 거예요.”

‘중국산 모조 비아그라와 제제, 어디에도 고이지 못하는 소변에 대한 짧은 농담’ ‘패리스 힐튼을 찾습니다’로 그는 2016년 문학동네 신인상을 수상하며 ‘드디어’ 작가로 등단하는 데 성공했다.

“냉소적인 나, 글 쓰면서 바뀌지 않을까”

―박상영 작가님의 글이나 인터뷰를 보면, 언제나 농담으로 슬그머니 마무리를 짓더라고요. 슬픈 이야기를 하면서도 마무리를 그렇게 해요. 마치 회피하듯이. 글도 그래요. 너무 우울하고 슬픈 이야기를 언뜻 발랄해 보이게 자꾸 눙쳐요.

“제가 슬픔을 극복하는 방식이 그런 거 같아요. 진짜 고통스러운 상황일 때 오히려 멀리서 저를 부감하게 돼요. 그럼 그냥 지나가는 일 같아요. 슬픔의 카타르시스가 분명히 있다는 것을 저도 알아요. 한바탕 울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지요. 그러나 그것은 제가 세상을 대하는 방식이 아니에요. 아, 슬프다 하고 끝나는 게 아니고 계속 이어져요. 그래서 더 멀리서 바라보려고 노력해요. 그렇게 해야지 버티기가 좋아요.”

―아까 스치듯 대구에서 벗어나고 싶었다고 했는데, 슬픔을 다루는 태도가 혹시 어린 시절 몸에 밴 ‘처세술’이 아닌가요?

“처세술이라는 표현이 정확한 거 같아요. 어릴 때는 자기가 사는 곳이 세상의 전부잖아요. 그래서 저에게는 절대 이곳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이 늘 있었어요. 지금도 그 시절로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특히 입시 결과를 중요시하고 빈부 격차도 큰 동네에서 자랐기 때문에, 하나라도 밉보이면 안 된다는 공포 속에서, 말 그대로 그냥 탈출하려고 공부하며 매일매일 죽고 싶은 것을 버티는 심정으로 보냈어요. 10대 남성사회가 대체로 그렇거든요. 어떤 방식으로든 나를 지키지 않으면 당장 잡아먹힐 것 같아요. 잘생겼다거나, 공부를 잘하거나, 운동을 잘하거나 뭐 하나라도 잘하는 게 다 권력이고, 그런 애들은 표적이 잘 되지 않아요. 저도 그래서 노력을 한 거죠. 결국 그 도시를 떠나고 부모님과 떨어져 살면서 조금씩 치유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서른두살인데 아직도 그때의 트라우마를 다 덜어내지 못한 듯해요.”

―고통스럽고 힘든 학창 시절이었지만 자기를 방어하는 데에는 그래도 성공하셨던 건가요?

“네. 한번도 얻어맞은 적도 없고, 반장도 했을 만큼 위장도 잘했어요. 그런데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1학년 때의 담임선생님께 찾아가서 대학 붙었다고, 이제 졸업한다고 말씀드렸더니, 내심 제가 자퇴하거나 큰일 낼까 봐 걱정 많이 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시절을 잘 버텼다고 생각했는데 선생님 눈에는 티가 났었나 봐요.”

그래서 나를 드러내지 않는, 소설이라는 장르가 자신과 잘 맞는다고 그는 말했다. “아무튼 소설은 픽션이고 그 뒤로 도망쳐 숨을 수 있어서 좋아요. 에세이는 진짜 나로서 이야기해야 하는데 그게 언제나 무서워요. 쓰면서 앓기도 하고. 진짜 내 본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대한 공포가 있는 것 같아요. 실상 저는 인생에 냉소적이고 부정적인 사람이거든요. 별로 기대도 없고요. 이런 나를 글 속에 그대로 보여주면 읽는 사람들이 얼마나 재미없겠어요. 자기 상처나 고통에 매몰되어 있는 사람들 옆에서 지켜보는 일도 얼마나 힘든데요. ‘그런 사람이 안 돼야지’라는 마음을 늘 갖고 살아요. 그래서 자꾸 남을 웃기고 싶어요. 제가 웃기는 사람이 되었으면 싶고. 그래서 제 글이 그런가 봐요. 근데 계속 글을 써가면서 저라는 사람이 또 조금씩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도 돼요. 이전에는 없던 책임감 같은 것도 생기고요.”

―책임감요?

“예전엔 그런 생각이 없었는데. 독자들의 반응을 확인하면서 제가 하는 일이 타인에게 영향을 주는 직업이라는 걸 점점 실감하고 있어요.”

“퀴어문제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꼭 이야기돼야 할 문제라고 생각”
혐오적·폭력적 반응 시달리지만
작가로서 사명감 느끼고 있어

그는 자신이 지닌 영향력을 통해 알려주고 싶은 일이 있었다. 그것은 ‘에이(A) 대위 사건’으로 알려진 2017년에 일어난 육군 성소수자 색출 사건이다. 이 사건은 당시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이 성소수자 군인을 색출해 군형법에 따른 형사처벌을 지시한 것으로, 50여명이 수사대상이 됐고 이 가운데 일부는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그렇게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라는 소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박상영 작가는 대단하지 않은 영화감독 ‘나’, 그리고 ‘나’와 함께 자이툰부대에서 복무했던 ‘왕샤’라는 두 퀴어(성소수자)를 통해 여느 젊은이들의 별 볼 일 없는 인생을 그려내며 소수자의 삶을 통해 ‘다수자’의 보편적인 인생을 훌륭하게 설명해낸다. 그는 이 소설로 등단 2년 만인 지난해 문학동네가 운영하는 제9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한국의 군대 내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어요. 의외로 모르시는 분이 많아요. 심지어 얼마 전에 해군에서 똑같은 사태가 또 발생했어요. 이 소설이 지금 미국의 문예지 <더블유더블유비>(WWB·Words Without Borders)에도 연재가 되고 있는데요. 한국에서 정말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냐며 놀라는 외국 독자들도 있어요.”

‘군내 성소수자 색출 사건’을 통해 이런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었다는 결심을 드러내는 일에 대해 그는 많이 조심스러웠다고 했다.

“처음에는 소설가로서의 제가 그냥 퀴어 작가로만 규정되지 않을까, 이 소설이 갈 수 있는 더 넓은 해석의 여지를 닫아버리게 될까 봐 두려웠어요. 그래도 정확하게 성소수자가 한국 사회에서 겪는 상황에 관해 이야기하고 지나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성소수자를 다루는 방식이 꼭 이래야 한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에요. 그렇지만 적어도 나라는 작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어요.”

“모욕적이었는데… 웃어버렸어요”

퀴어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세간에 알려지면서 신문이나 포털사이트에 한번씩 자신이 노출될 때마다 혐오적인 악플이, 고소해서 이른바 ‘합의금’으로 먹고살 수도 있을 만큼 달린다고 말하면서도, 그는 다시 한번 ‘책임감’이라는 단어를 언급했다.

“지방에 내려가 소규모 행사를 한 적이 있었어요. 도란도란 질의응답을 하는 시간이었는데, 이런 질문이 있었어요. ‘작가님은 왜 남성끼리의 사랑을 아름답게 그려놓으셨나요, 기분 더럽게.’”

박상영 작가는 포스트잇에 적힌 그 질문을 보는 순간 입꼬리가 떨리고 표정관리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질문자가 누구인지 물었고 어떤 남성이 순순히 손을 들었다. 이런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해도 된다고 생각을 하는 것이 그 태도에서 자연스럽게 묻어나왔다. 그런데.

“그 순간에 제가 계속 웃었어요. 그분한테 내가 화를 냈어야 했는데. 내가 정확하게 이야기를 했어야 하는데, 나는 웃었구나. 되게 크게 웃었구나. 그런 생각이 뒤이어 들었어요. 제가 태어나서 겪어본 가장 모욕적인 경험이었어요. 나 자신과 모든 퀴어에게 미안한 일을 했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때 저는 웃어서는 안 됐어요. 이런 순간에도 저는 어떤 책임감을 느껴요.”

박상영 작가는 그 순간에 왜 웃었을까. 나는 굳이 물어보지 않았다.

내가 여기서 정색하면 이 분위기가 어색해지지 않을까. 다른 사람들까지 불편해지지 않을까. 내가 너무 예민하게 구는 것은 아닐까. 그냥 내가 참고 좋게 좋게 넘어가는 게 좋지 않을까. 그는 그런 생각들을 순간적으로 했으리라. 아무렇지 않게 폭력적인 말을 던지는 남성들 앞에서 많은 여성이 그랬듯 말이다.

“처음에 제가 그냥 재미있어서 이야기를 쓰는 것에서 그쳤다면 이제는 제가 의도했건 의도치 않았건 퀴어 소재를 쓰는 작가로서의 사명 같은 것도 있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은근히 반골 기질이 있나 봐요. 몸 사리지 않고 더 적극적으로 얘기하고 싶어요. 작품도 점점 그렇게 쓰려고 노력 중이에요. 피해 가지 않으려고요.”

박상영 작가가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근처 골목길에 서 있다. “성소수자 문제는 지금 이 순간 우리 사회에서 꼭 이야기되어야 할, 더 이상 나중으로 미룰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박상영 작가가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근처 골목길에 서 있다. “성소수자 문제는 지금 이 순간 우리 사회에서 꼭 이야기되어야 할, 더 이상 나중으로 미룰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박상영 작가가 현재 준비 중인 두번째 책 속 소설들에는 모두 퀴어들이 등장한다고 했다.

“특히 소수자 이야기를 쓸 때는 정보의 양이 중요한 것 같아요. 납작한 캐릭터가 되지 않도록 많이 노력하고 있어요. 비판받으면 고쳐나가면서 쓰겠다는 마음으로, 그래도 쓰지 말지는 말자고, 욕먹을지라도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얘기를 계속하자고 다짐해요. 모두가 개인으로서 존중받고 나로서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게 문학의 역할이라고 믿거든요. 말로는 참 단순하고 쉬워 보이는데 그게 사실은 굉장히 어려운 거라는 걸 느껴요. 글이라는 도구를 통해서 세상과 소통하면서 더욱 그 벽을 절감하고 있어요.”

―현재 퀴어문학에 집중하고 계시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지금의 저 자신에게도 중요한 문제이고, 지금 이 순간 우리 사회에도 꼭 이야기되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더 이상 나중으로 미룰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두번째 책은 언제쯤 만나볼 수 있을까요?

“글쎄요, 여름쯤? 다 쓰긴 했어요. 한 작품 빼고는 다 회사 다닐 때 쓴 거예요. 어떻게 그 많은 이야기를 다 썼는지 모르겠어요. 정말 죽을 뻔했어요. 지난 3년간 저를 너무 혹사한 것 같아요. 이제는 조금 보듬으면서 가고 싶어요. 지금 이 순간이 사실은 10년 전의 제가 너무나 간절히 바라왔던 모습인데 이 순간을 무척 불행하게 보내고 있는 것 같아서요.”

“욕먹을지라도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얘기 계속하자고 다짐”
“모두가 개인으로서 존중받고
나로서 살아가게 해주는 게 문학”

그 두번째 책에는 아마도 지난 1월 제10회 젊은작가상 대상(젊은작가상은 7편의 수상작을 선정하고 그중 1편을 대상으로 결정한다)을 받은 ‘우럭 한점 우주의 맛’이라는 소설도 들어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소설이 수록된 문예지 <창작과 비평> 2018년 겨울호를 인터뷰 당일 아침 전자책으로 운 좋게 발견하여 내려받아 읽을 수 있었다. 소설을 읽었다고 알려드렸더니 재미있었나요 하고 작가님이 속닥거리듯 물었고 나는 너무 좋았다고 힘주어 대답했다.

‘우럭 한점 우주의 맛’은 ‘나’가 5년 전 ‘그’에게 보낸 자신의 일기를 우편으로 돌려받으면서 시작된다. 퀴어임을 떳떳하게 공개하지 못하는 ‘그’와의 파국으로 치닫는 관계, 아들의 정체성을 바꿔보겠다고 고등학생이던 ‘나’를 폐쇄병동에 억지로 입원시켰던 그리고 현재는 암 투병 중인 엄마를 향한 애증을 동시에 보여주며 나아가는 소설이다.

―‘패리스 힐튼을 찾습니다’에 나오는 박소라라는 인물을 박상영 작가님께서 가장 본인과 가까운 인물로 꼽으셨단 인터뷰를 읽었어요. ‘우럭 한점 우주의 맛’ 주인공이 저는 약간 박소라의 남자 버전 같았어요.

“진짜 너무 정확하셔서 지금 약간 소름이 돋았어요.”

―앗, 그랬나요.(웃음)

“‘패리스 힐튼을 찾습니다’라는 소설은 제가 등단 전에 썼던,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처음으로 제 말투로 시도한 소설이에요. 그 소설 속 박소라에게 정말 저의 많은 부분, 안 좋은 면들까지도 투영을 많이 했는데 아무래도 여성 캐릭터이다 보니 오해를 했던 분들도 있었고 제 의도가 잘 전달되지 못한 부분이 있었어요. 아쉬움이 컸지요. 또 박소라를 통해 하고 싶었던 다른 이야기들, 특히 엄마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하지 못하고 분량상 생략한 것도 상당했고요. 그래서 첫번째 소설집을 내자마자 바로 남성 화자로 작품을 다시 쓰기 시작했어요. 그게 ‘우럭 한점 우주의 맛’이 되었네요.”

건강해져서 함께 소주 마셔요

‘패리스 힐튼’이라는 개를 찾는 일로 시작하는 ‘패리스 힐튼을 찾습니다’의 주인공 ‘박소라’와 ‘김’은 서로를 은연중에 경멸하고 한심하게 생각하면서도 서로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커플로 등장한다. 박소라는 인스타그램에 사로잡혀 생각 없이 사는 인물로 김에게 평가받고 그렇게 이야기는 끝나버리지만 박소라는 사라지지 않았다. 암에 걸린 어머니를 간호하며 생의 허무를 견디기 위해 인스타그램에 집착하는, 김이 알지 못하는 박소라가 다른 단편 ‘부산국제영화제’ 속에 건재하며, 마치 평행우주처럼 ‘우럭 한점 우주의 맛’에서는 남성 화자로 깃든 박소라가 더 오롯하게 펼쳐진다. 박소라는 계속 박상영 작가의 글 속에서 읽는 사람과 동반하고 있다.

―‘우럭 한점 우주의 맛’의 마지막 문장이 너무 슬펐습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녀(엄마)가 아무것도 모르는 채 죽어버리기를 바라는 일뿐이다”라는 그 말이요.

“정말 슬펐어요. 마지막 문장을 쓰고 나서 되게 슬펐어요 사실은. 내가 세상을 이렇게 보고 있었구나를 느낀 거예요. 어떤 관계는 해소되거나 좋아지지 않은 채 그대로 포기해버려야 하는 거구나. 내가 더 나아질 수 있고 상대가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믿는 건 다 허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게 가족관계라도요. 엄마가 그 글을 보실까 봐 마음이 안 좋아요. 그 소설로 상을 받게 됐다는 소식 듣자마자 바로 든 생각은 ‘아, 엄마가 안 봐야 하는데’였어요. 어쨌든 지어낸 이야기이지만, 엄마가 읽으면서 또 얼마나 감정이입을 하시겠어요.”

―작가님의 인생에서 이 작품은 빼면 안 될 거 같다 싶은 필수적인 작품이 있을까요?

“발표된 모든 작품을 읽은 작가가 박완서 선생님이에요. <아주 오래된 농담>이라는 작품을 중학생 때 처음 읽고 그 뒤로 그분의 모든 작품을 다 읽었어요. 그런 글을 쓰는 것까진 못 되더라도 정말 똑똑하게 유년 시절, 청년 시절을 거쳐서 삶을 있는 그대로 꼭 끌어안는 태도를 정말 배우고 싶었어요.”

―장편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네, 올해 말부터 장편 연재 들어갈 예정이에요. 제가 살던 대구 집 근처에 수성못이라는 호수가 있거든요. 그 호수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10대들의 방황기 같은 이야기예요. 지금 연재하고 있는 다이어트 에세이도 잘 묶어서 내년이나 내후년에 책으로 발표하고 싶고요. 동시에 다이어트에도 성공해서 지방간으로부터 탈출하고 고도비만으로부터도 탈출하고 싶어요. 건강 때문에 지금 술도 끊고 담배도 끊은 상황인데, 얼른 몸이 좀 나아져서 친구도 만나고 다시 술도 마시고 싶어요.”

박상영 작가와 요조가 한겨레신문사 근처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박상영 작가와 요조가 한겨레신문사 근처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인터뷰 내내 ‘무슨 마음인지 저는 알 것 같아요’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참느라 힘이 들었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부터도 거리감을 두기 위해 애를 써야만 했다. 그리고 이런 감정을 비단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작가님의 이야기가 제 이야기예요, 저도 회사에서 ‘마이클’이에요, 하면서 거리감을 느끼지 않는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마주할 때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고 박상영 작가는 말했다.

소설집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의 뒤편 작가의 말 속에서 ‘함부로 누군가를 이해한다고 말을 하는 것을 경계하려’ 하는 박상영 작가의 조심스러움을 슬그머니 보았다. 그 조심스러움이 불러일으키는 놀라운 공감대를 보면서 인간이, 인간과, 인간다움으로 버티며 지낼 수 있는 단 하나의 열쇠가 있다면 그건 ‘조심스러움’일지도 모르겠다고, 조심스럽게 생각해보았다. 작가님, 제발 건강해져서 다음에 꼭 소주 마셔요라고 조심스럽고 바보같이 말하며 우리는 사이좋게 한겨레신문사가 있는 만리재고개에서 공덕역까지 걸어 내려왔다.

[출처 :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