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terature(문학)/Poem(시)

이해인 시 모음 (기타08)

2018. 4. 28. 21:14

 

 

 

 

 

 

 

기다리는 행복 / 이해인

 

온 생애를 두고 내가 만나야 할 행복의 모습은

수수한 옷차림의 기다림입니다.

겨울 항아리에 담긴 포도주처럼 나의 언어(言語)를 익혀

내 복된 삶의 즙을 짜겠습니다.

밀물이 오면 썰물을, 꽃이 지면 열매를,

어둠이 구워 내는 빛을 기다리며 살겠습니다.

나의 친구여, 당신이 잃어버린 나를 만나러

더 이상 먼 곳을 헤매지 마십시오.

내가 길들인 기다림의 일상(日常) 속에 머무는 나.

때로는 눈물 흘리며 내가 만나야 할 행복의 모습은

오랜 나날 상처받고도 죽지 않는 기다림,

아직도 끝나지 않은 나의 소임입니다

 

 

 

 

 

 

 

 

 

삶 / 이해인

 

내 몸 속에 길을 낸 혈관 속에

사랑은 살아서 콸콸 흐르고 있다


내 허전한 머리를 덮은 머리카락처럼

죽음도 검게 일어나

나와 함께 매일을 빗질하고 있다


깎아도 또 생기는 단단한 껍질

남모르게 자라나는 나의 손톱처럼

보이지 않는 신앙도

보이지 않게 크고 있다


살아 있는 세포마다

살아 있는 사랑

살아 있는 슬픔을

아무도 셀 수가 없다


산다는 것은

흐르면서 죽는 것

보이지 않게


조금씩 흔들리며

성숙하는 아픔이

 

 

 

'Literature(문학) > Poem(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해인 시 모음(기타 11)  (0) 2018.05.03
이해인 시 모음(기타09)  (0) 2018.04.30
이해인 시 모음(기타 07)  (0) 2018.04.27
이해인 시 모음(기타06)  (0) 2018.04.26
이해인 시 모음 (기타5)  (0) 2018.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