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행복 / 이해인
온 생애를 두고 내가 만나야 할 행복의 모습은
수수한 옷차림의 기다림입니다.
겨울 항아리에 담긴 포도주처럼 나의 언어(言語)를 익혀
내 복된 삶의 즙을 짜겠습니다.
밀물이 오면 썰물을, 꽃이 지면 열매를,
어둠이 구워 내는 빛을 기다리며 살겠습니다.
나의 친구여, 당신이 잃어버린 나를 만나러
더 이상 먼 곳을 헤매지 마십시오.
내가 길들인 기다림의 일상(日常) 속에 머무는 나.
때로는 눈물 흘리며 내가 만나야 할 행복의 모습은
오랜 나날 상처받고도 죽지 않는 기다림,
아직도 끝나지 않은 나의 소임입니다
삶 / 이해인
내 몸 속에 길을 낸 혈관 속에
사랑은 살아서 콸콸 흐르고 있다
내 허전한 머리를 덮은 머리카락처럼
죽음도 검게 일어나
나와 함께 매일을 빗질하고 있다
깎아도 또 생기는 단단한 껍질
남모르게 자라나는 나의 손톱처럼
보이지 않는 신앙도
보이지 않게 크고 있다
살아 있는 세포마다
살아 있는 사랑
살아 있는 슬픔을
아무도 셀 수가 없다
산다는 것은
흐르면서 죽는 것
보이지 않게
조금씩 흔들리며
성숙하는 아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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