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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과 보도연맹

2017. 10. 2. 14:49

보도연맹

[ ]

요약 좌익인사 교화 및 전향을 목적으로 1949년 조직된 단체.
구분 반공교화단체
설립일 1949년 6월
설립목적 좌익인사 교화 및 전향
주요활동/업무 반공운동 및 국가보안법 운용 대책 마련
소재지 서울
규모 30만 명(1949)

1949년 좌익 운동을 하다 전향한 사람들로 조직한 반공단체로, 정식명칭은 ‘국민보도연맹’이다.

1948년 12월 시행된〈국가보안법〉에 따라 좌익사상에 물든 사람들을 전향시켜 보호하고 인도한다는 취지로 결성되었는데, 일제강점기 사상탄압에 앞장섰던 ‘시국대응전선사상보국연맹’체제를 그대로 모방하였다.

대한민국 정부 절대 지지, 북한정권 절대 반대, 인류의 자유와 민족성을 무시하는 공산주의 사상 배격·분쇄, 남·북로당의 파괴정책 폭로·분쇄, 민족진영 각 정당·사회단체와 협력해 총력을 결집한다는 내용을 주요 강령으로 삼았다.

1949년 말에는 가입자 수가 30만 명에 달했고, 서울에만도 거의 2만 명에 이르렀다. 주로 사상적 낙인이 찍힌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였고, 거의 강제적이었으며, 지역별 할당제가 있어 사상범이 아닌 경우에도 등록되는 경우가 많았다.

6·25전쟁이 일어나자 정부와 경찰은 초기 후퇴 과정에서 이들에 대한 무차별 검속()과 즉결처분을 단행함으로써 6·25전쟁 중 최초의 집단 민간인 학살을 일으켰다. 그러나 전쟁 와중에 조직은 없어졌지만, 지금까지도 정확한 해명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보도연맹 사건(保導連盟事件)

1950년 한국군이 보도연맹원이나 양심수를 포함해 적어도 20만 명 남짓을 살해했다고 여겨지는 민간인 학살 사건이다. 보도연맹원 학살 사건이라고도 한다.1990년대말에 보도연맹원 학살 사건 피해자들의 시체가 발굴되어, 보도연맹 사건이 실제 있었던 사건임이 확인되었다.

 

 

 

사건내용

보도연맹은 1949년 6월 5일 좌파전향자로 구성되어진 반공단체 조직이며, 정식 명칭은 국민보도연맹이었다. 1948년 12월 시행된 국가보안법에 따라 좌익사상에 물든 사람들을 사상전향시켜 이들을 보호하고 인도한다는 취지로 결성되었다. 대한민국정부 절대 지지, 북한정권 절대 반대, 인류의 자유와 민족성을 무시하는 공산주의사상 배격 ·분쇄, 남로당,조선 로동당 파괴정책 폭로,분쇄, 민족진영 각 정당,사회단체와 협력해 총력을 결집한다는 내용을 주요 강령으로 삼았었다.

국가보안법의 시행에 따라 1949년 말에는 가입자 수가 30만 명에 달했고, 서울만해도 거의 2만 명에 이르렀다. 주로 좌파사상적 낙인이 찍힌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였고, 거의 강제적이었으며, 지역별 할당제가 있어 사상범이 아닌 경우에도 등록되는 경우가 많았다. 선우종원 당시 치안검사의 증언에 따르면, 연맹원 모집은 주로 좌파 경험이 있는 자들이나, 사상범(양심수)을 대상으로 하였다고 하나, 이와 관련된 증언은 엇갈리고 있으며, 내무부(당시 내무부장 장석윤)가 관련이 된 실질적인 관제조직이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남침하면서 (좌파인사들에 대한 사상 개조 단체였던) 보도연맹이나 양심수 북한과 내응하고 뒤에서 배신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우려한 대한민국 정부와 대한민국 국군이나 경찰또는 보도연맹원이나 양심수들이 수감되었던 교도소 교도관들이 보도연맹원 여러 명을 학살했다.

 

경찰은 초기 후퇴 과정에서 이들에 대한 무차별 검속과 즉결처분을 단행함으로써 한국전쟁 중 최초의 집단 민간인 학살(대량학살)을 일으키고, 경기도 이천에서 군복을 입고 경찰 마크를 붙인 사람들이 국민 보도연맹원 100명을 총살했고, 대전 교도소에서 3000명을 처형하는등, 곳곳에 각 마을별로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한 사람들을 무차별 학살했다.

이는 곧 북한 인민군 점령지역에서 일어난 좌파세력에 의한 보복학살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전쟁 와중에 국민보도연맹 조직은 없어졌지만, 지금까지도 정확한 해명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6.25전쟁 학살된 보도연맹원의 수가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 알 길은 없지만, 최소 20만 명, 많게는 이 학살되었으리라는 추산이 나오고 있다.

사건진상조사

일부 우파단체가 가장 우려한 건 위장 전향 좌파세력들이 유사시에 보도연맹 조직을 이용해 반정부적 활동을 취하리라는 것이었다. 6.25 발발 후 보도연맹원의 대량학살엔 이런 우려가 적잖이 작용했다.

현재 조사된 남쪽의 학살피해 보도연맹원은 약 20만 명으로 추산이 되고 있다. 오랜기간 언급이 철저히 금기로 여겨져 왔지만, 최근 들어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등에서 중요한 장면으로 다루어지는 등 논의가 확산되고 있으며, 조정래 선생의 역사소설《태백산맥》에서도 경찰이 보도연맹원들을 학살하는 내용이 나온다.

 

 

 

피해자현황

 

한국전쟁 전사자 수:

한국군

군인
14만 9005명 전사
71만 783명 부상
13만 2256명 실종
민간인
37만 3599명 사망
22만 9625명 부상
30만 3212명 행방불명
총계
52만 2604명 사망
94만 408명 부상
43만 5468명 실종
총계 189만 8480명 사상

 

북한군

군인
29만 4000명 전사
22만 6000명 부상
12만 명 실종 및 포로
민간인
40만 6000명 사망
159만 4000명 부상
68만 명 행방불명
총계
70만 명 사망
182만 명 부상
80만 명 실종
총계 332만 명 사상

 

 

보도연맹사건 희생자:20만명

 

 

 

이승만정권등 친일파에 학살당한 독립운동가…

------------------------                          sbs‘그것이 알고싶다’에 보도연맹 학살 고발

 

 

“골로 간다. 물 먹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이다. 둘 다 죽음이나 실패를 의미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 속에는 잔인했던 우리의 현대사가 숨어있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이승만 정부는 국민보도연맹원을 집단학살했다. 희생자 대다수는 이승만 정권이 좌익세력을 관리한다는 명분으로 만든 반공단체인 ‘국민보도연맹’에 영문도 모른 채 가입했고,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전투와는 상관없는 지역에서 학살됐다. 이승만 정권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전향한 사회주의자들 관리하기 위해 만든 ‘시국대응전선 사상보국연맹’이란 단체를 모방해서 ‘국민보도연맹’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들을 각 지역별로 모아 자유주의자로 사상교육을 시키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인민군에 부역하거나 동조할 수 있다면서 학살했다. 당시 내륙에 살던 이들은 산으로 끌려가 ‘골로 가야’했고, 바닷가에 살던 이들은 바다에 수장돼 ‘물을 먹어야’했다. 학살당한 이들의 대부분은 순박한 농민들이었다. 이들 가운데는 항일독립운동가도 상당수 포함돼 있었다.그렇게 억울한 죽음을 보며 만들어진 표현이 바로 ‘골로 간다’와 ‘물 먹었다’는 말이다.

이렇게 학살당한 이들은 수십만 명에 이른다. 하지만 이들의 억울한 죽음은 진실이 밝혀지지 못한 채 숨겨진 과거가 되고 말았다. 지난 19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방영된 ‘도둑골의 붉은 유령 - 여양리 뼈 무덤의 비밀’은 이 보도연맹 학살 사건을 다루고 있다.

이 보도연맹 사건은 친일파와 연결되어 있었다. 일본 제국주의가 반대자들과 독립운동가의 사상을 통제하려는 목적으로 만든 조직이 이른바 ‘보국연맹’이며 ‘야마토주쿠’라는 이름으로 존재했던 것이다. 그런데 해방 후 친일 검사와 경찰들이 야마토주쿠와 꼭 닮은 보도연맹을 창설한 것이다. 그리고, 친일 검사와 경찰들은 일제에 맞서 독립운동을 벌였던 독립운동가들까지 좌익으로 몰아 살해하는 범죄를 저지르고 말았다.

친일파는 친일이라는 치부를 덮고 권력과 부를 유지하기 위해 반대자들을 ‘빨갱이’라 명명했다. 그리고 실체조차 불분명한 오랜 혐오는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공산주의를 거부하고 남하한 우익민족주의자도, 계엄군의 총칼에 맞서 저항한 시민들도, 생존권을 요구하는 노동자들도 ‘빨갱이’로 불리고 위험한 존재로 몰렸다. 그리고 그 낙인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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