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 9년 11월 12일 승정원일기에는 당시 약방제조였던 송인명이 “잘 익은 밤이 신장을 보하고 다리를 튼튼하게 돕는다”며 자주 먹을 것을 권하는 기록이 나온다. 이에 영조가 “밤이 너무 딱딱해서 먹기 힘들다”고 하자 송인명은 “영남지역의 밤 가운데 무르고 맛이 좋은 것들이 있다”고 재삼 권한다.
의관들의 이런 처방 때문일까. 영조의 맏아들인 효장세자(진종)의 부인인 현빈은 시아버지 영조의 건강을 염려하면서 늘 밤을 삶았다. 남편 효장세자가 열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 그녀의 나이 열네 살. 이후 그는 얼굴의 홍조 증상과 종기 때문에 고생하다 서른일곱 살에 세상을 떠났는데, 병세가 심해져 숨을 거둔 당일까지도 밤을 삶았다. 영조 28년 1월 22일 조선왕조실록에는 현빈의 효심에 감동해 영조가 남긴 말이 기록돼 있다.
‘현빈이 나를 먹이려고 늘 직접 밤을 삶았는데 영원히 졸서(卒逝)하던 날조차 삶아 놓은 밤이 소반에 남아 있었으니, 이는 현빈이 그날도 진상(進上)하려 삶아 놓았다가 병이 위독해져 하지 못한 것이다.’
한의학적 관점에서 밤은 신장(腎) 기능을 도우는, ‘보신(補腎) 과일’이다. 한방에선 예부터 신장에 좋다는 ‘보신(補腎)’의 개념을 몸에 좋다는 ‘보신(補身)’의 개념과 엇비슷하게 사용해 왔다. 사실 한방에서의 보신(補腎)은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중국의 고전인 ‘난경’은 신장에 대해 ‘생명의 정(精)을 간직하는 부위로 정신과 원기가 생겨나는 곳이며 남자는 정액을 간직하고 여자는 포(胞), 즉 자궁이 매달린 곳’이라고 정의한다. 생명활동을 관장하고 생식활동을 주관하는 게 보신(補身)의 핵심이란 얘기다. 보신(補腎)이 몸이 좋아진다는 보신(補身)과 구별되지 않고 사용된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밤은 코피와 알레르기비염으로 인한 콧물에도 유용하다. 밤의 떫은맛과 팍팍한 육질은 넘쳐흐르는 맑은 콧물을 빨아들이는 작용을 하고 코피가 날 정도로 팽창한 혈관의 상태를 수렴한다. 특히 몸이 허약한 어린아이들이 코피를 자주 흘릴 때는 밤을 구워서 먹이거나 밤의 속껍질을 삶아 그 물을 마시게끔 하면 좋은 효험을 얻을 수 있다.
추석이 다가온다. 제사 음식에서 밤이 빠지지 않는 이유는 가족의 본질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 집안에서는 아무리 싸우더라도 집 밖에서만큼은 밤 껍질처럼 매끈한 모습으로 단정하게 보이라는 가르침이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