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이를 못 먹는다. 정확히는 신선한 오이일수록 그 오이를 자른 단면에서 나는 풋풋한 향이 비릿하게 느껴져서 못 먹겠다. 오이 향을 싫어하는 유전자는 타고나는 거라 해도 유난한 입맛임은 틀림없는 것 같다. 등산 간식으로 오이와 고구마 중에 고르라면 난 주저 없이 고구마를 고를 테니까.오이 특유의 향을 싫어하는 탓에 오이의 친구들도 다 낯설다. 수박, 멜론, 동아, 그리고 참외도 그렇다. 참외라는 이름이 오이에서 왔다는 걸 아는 사람이 드물다. 접두사 ‘참’에 오이가 합쳐져 줄임말처럼 전해오다 참외란 이름으로 굳어졌다고 한다. 참오이를 빨리 말하면 참외. 그러니까 참외는 결국 달콤한 오이인 건가?참외는 수분 함량이 90%에 달하는, 여름에 꼭 필요한 채소다. 참외도 토마토처럼 과일인지 채소인지 누군가 정해줘야 하는 애매모호한 캐릭터인데 정확하게는 과채류에 속하며 한국 공공기관에서는 채소로 분류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오이와 비슷한 성향에 단맛을 지닌지라 특정 카테고리로 정의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하지만 단맛을 가득 지닌 박과의 식물, 참오이라고 생각하면 당연히 채소가 맞다.
실제로 참외 요리법은 일반적인 채소와 비슷한 것이 많다. 껍질을 살려서 소금에 절였다가 꼭 짜서 다시 식초나 간장물에 담가 만드는 참외장아찌, 얇게 썰어 된장이나 고추장에 무쳐 먹는 참외무침, 통째로 소금에 묻었다가 액젓과 함께 김치를 담가 먹는 참외김치 등 딱 채소 요리법의 정석이다. 다만 단맛이 크게 도드라지고 수분이 많아서 굽거나 찌는 요리법과는 잘 맞지 않는다. 수박은 구우면 희한하게 고소한 맛이 나기도 하지만 참외는 쓴맛이 감돌기도 한다. 섣불리 열을 가하지 말자.간단한 참외 요리 몇가지를 소개한다. 먼저 초절임. 크기가 작고 단단한 참외를 구했다면 고무장갑을 끼고 뜨거운 물에 박박 문질러 껍질째 씻어준다. (껍질째 먹을 때는 뜨거운 물로 씻어주면 좋다.) 그리고 절반으로 갈라 속의 씨를 파내고 소금과 식초를 넣고 끓인 물에 10초간 데쳐낸다. 참외는 그대로 식혀두고 식초 1, 설탕 1, 소금 0.2의 비율로 섞은 단촛물에 잠기게 담가 냉장고에서 3일 숙성하면 참외초절임이 완성된다. 여름에 시원하게 먹기 그만이다.
참외가 너무 많아 처치 곤란이라면 물김치를 만들어보자. 다시마 육수에 멸치액젓이나 새우젓, 소금 약간으로 간을 하고 다진 마늘, 미나리를 잔뜩 넣고 참외를 나박나박 썰어 넣어준다. 기호에 따라 고춧가루를 살짝 더해도 좋다. 요즘은 동치미나 물김치에도 사이다를 넣어 달고 톡 쏘는 맛으로 즐긴다는데, 참외물김치는 사이다 없이도 딱 그런 맛이 난다. 냉장고에 두고 하루이틀 숙성시켜 먹으면 국물은 시원하고 건더기는 달달한 최고의 단짠 조합 물김치로 변신한다.약간 곪거나 무른 참외가 있다면 껍질과 씨를 제거하고 살은 믹서기에 곱게 갈아준다. 여기에 다진 마늘, 간장, 식초, 고춧가루를 약간씩 섞어 소스를 완성하고 상추나 알배추를 버무려 먹으면 엄청 고급스러운 맛의 참외겉절이가 된다. 또 이렇게 참외 간 것에 꿀과 레몬, 소금, 후추, 올리브오일을 더한 뒤 부라타치즈와 함께 먹으면 세상 힙한 부라타치즈 참외 샐러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