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닥터의 베스트 건강법]정찬권 서울성모병원 병리과 교수
‘달리는 도중 걷거나 쉬지 않기’ 원칙… 10km를 1시간내 달리는 훈련 해와
주 3회 꾸준히 했더니 피곤 사라져… 1년에 마라톤대회 2개이상 참가 목표
“중년에 달리면 무릎에 악영향? 무리하지만 않으면 관절염 위험 없어”
병리과 의사는 직접 환자를 진료하지 않는 비(非)임상 의사다. 주로 암과 같은 중증질환을 ‘최초 진단’한다. 환자에게서 채취한 조직을 현미경으로 관찰해 양성 종양인지 악성 종양인지, 병기(病期)는 어떤지 등을 판독한다.
정찬권 서울성모병원 병리과 교수(50)는 이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2021년 9월에는 미국 전문 기관의 발표에서 갑상샘유두암 분야 세계 최고 전문가 20위에 올랐다. 얼마 전에는 세계보건기구(WHO)가 발간하는 종양 분류 시리즈 교과서에 공동 저자로 참여했다. 국내 대형 국책 프로젝트 연구를 총괄하고 있기도 하다.
정 교수는 오후 10시 이전에 퇴근한 적이 별로 없다. 토요일에도 출근하는 날이 더 많다. 해야 할 연구가 쌓여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중독’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하는 이들이 있을 정도다.
젊었을 때는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 연구를 해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당연히 건강을 염려해 본 적도 없었다. 나이는 속일 수 없었던 걸까. 40대 후반으로 접어들 무렵인 4년 전 갑자기 허리 통증이 시작됐다.
통증 때문에 현미경을 들여다보기 힘들었다. 발을 떼기도 어려워 질질 끌고 다닐 정도였다. 처음에는 수술을 고민했지만 이내 마음을 바꿨다. 의자에 쿠션을 둬 허리를 편하게 했고, 가급적 힘을 쓰지 않으려 했다. 덕분에 통증은 한 달 만에 잦아드는 듯했다. 하지만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그대로 두면 재발할 게 뻔했다. 동료 의사는 운동만이 답이라 했다.
정 교수는 운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30대 초반에 테니스나 골프를 잠시 했지만 실력이 늘지 않고 재미도 없어 곧 관뒀다. 그때를 빼곤 운동이란 걸 해 본 적이 없었다. 이젠 별수 없었다. 정 교수는 처음으로 독하게 마음을 먹었다. “건강을 위해 운동하자.”
어떤 운동을 할까. 3개의 기준을 세웠다. 첫째,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별도 트레이닝 없이 곧바로 시행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퇴근 시간인 오후 10시 이후에 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충족하는 운동은 딱 하나밖에 없었다. 달리기였다. 허리 통증이 사라지고 한 달이 지난 후 정 교수는 달리기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 무렵 고등학교 동문회 달리기 동호회 행사가 열린 게 행운이었다. 이 행사에 정 교수가 도전했다. 처음으로 달려보는 그에게 ‘달리기 선배’들의 조언이 콕 박혔다. “절대로 걷지 말고, 끝까지 달리기를 유지해라.”
정 교수는 20분 동안 쉬지 않고 달리기로 했다. 쉽지는 않았다. 걷고 싶은 유혹이 너무 강했다. 그래도 꾹 참았다. 덕분에 20분 동안 3km를 쉬지 않고 달리는 데 성공했다. 이날 이후 ‘달리는 도중에 쉬지 않기’는 정 교수의 달리기 제1원칙이 됐다. 이후 매주 3회씩 꼬박꼬박 달렸다. 4개월 후에는 7km를 쉬지 않고 달릴 수 있게 됐다. 그해 12월 고교 동창들과의 송년회에서 새해 목표를 밝혔다. “공식 마라톤대회에 2회 이상 출전하고, 10km를 50분 안에 완주하겠다.”
허언(虛言)이 되지 않으려면 노력해야 한다. 정 교수도 그랬다. 한 번에 10km 이상의 거리를 1시간 내외에 달리는 훈련을 거듭했다. 그 결과 2019년 3월 서울국제마라톤대회 겸 동아마라톤을 비롯해 3개의 대회에 출전해 10km를 달릴 수 있었다. 약속을 지킨 셈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2020년과 2021년에는 대회에 출전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올 들어 다시 3개 대회에 출전했다.
요즘도 정 교수는 달린다. 평일에는 퇴근한 뒤 오후 10시쯤에 달린다. 그사이에 달리는 거리와 시간이 모두 늘었다. 평일에는 보통 10km, 일요일 아침에는 15∼20km를 쉬지 않고 달린다. 어림잡아 1시간∼1시간 반 동안 꾸준히 운동하는 셈이다.
정 교수는 달리기를 시작한 후 몸이 가벼워졌다고 했다. 다리가 튼튼해져서 오래 서 있어도 피곤하지 않다. 걷는 것을 좋아하게 돼 매일 1만 보를 채운다. 4층 연구실까지 엘리베이터를 타는 일도 없어졌다.
달리기의 효과가 또 있을까. 정 교수는 달리기를 시작한 후 ‘이게 최상일까’ 하는 호기심에 국내외 의학논문을 뒤진 적이 있다고 했다.
2020년의 해외 논문이 그중 하나다. 중년에 장거리 달리기를 하면 허리가 강해지고 디스크 증세도 완화된다는 내용이었다. 허리디스크는 퇴행성 질환이라 운동을 해도 효과가 작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 편이다. 하지만 이 논문에 따르면 오래 달렸을 때 신체에 지속적인 자극이 가해져 관절, 디스크 등이 강화된다. 달리기가 노화의 속도를 늦춘다는 이야기다.
달리기가 허리 건강에 좋다는 또 다른 논문도 발견했다. 매주 20∼40km를 달리는 사람과 거의 달리지 않은 사람의 허리를 자기공명영상(MRI) 촬영해 비교한 논문이었다. 꾸준히 달린 사람일수록 허리 근육과 디스크 상태가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달리기가 무릎 관절에 좋지 않다는 속설은 사실일까. 정 교수는 2018년 미국 미네소타대에서 발표된 논문을 제시하며 “아니다”라고 했다. 이 논문에 따르면 마라톤 선수처럼 고강도로 달리는 경우라면 무릎 관절염 위험도가 증가할 수 있다. 하지만 건강을 위해 달리는 일반인에서는 무릎 관절염 발생이 증가한다는 증거가 발견된 게 없다. 오히려 뼈, 심장, 두뇌에 장기적으로 유익한 효과가 나타났다. 정 교수는 “전문 운동선수가 아니라면 달리기를 해도 무릎 건강을 크게 위협하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부상 없이 달리려면
정찬권 서울성모병원 병리과 교수는 4년째 큰 부상 없이 달리기를 이어가고 있다. 운동과는 담을 쌓았던 그가 안전하게 운동을 이어갈 수 있는 비결은 뭘까.
첫째, 속도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보다는 천천히 달리더라도 가급적 걷지 않으려 한다. 이런 운동 습관을 만들어 놓으면 시간이 지나면서 달리는 거리와 시간이 모두 늘어난다는 것이다. 무릎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보폭을 짧게 한다. 발바닥 중앙부가 먼저 땅에 닿게 하면 무릎에 가해지는 부담이 크게 줄어든다. 빨리 달리려고 보폭을 크게 하면 발뒤꿈치가 먼저 땅에 닿는다.
둘째, 운동을 일시적으로라도 중단하면 안 된다. 가끔 쉬고 싶을 때에도 정 교수는 뛰러 나간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한 번의 휴식이 일주일로 이어지고, 결국에는 달리기를 중단할 수도 있다. 조금 싫더라도 일단 야외로 나가야 한다. 그러면 달리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 교수는 폭우가 쏟아지지 않는 한 야외 달리기를 강행한다.
셋째, 절대 무리하지 말아야 한다. 정 교수는 1주일에 3회를 넘지 않는다. 또한 2시간을 초과해 달리지 않는다. 4년의 달리기 경력을 감안하면 지금 수준이 최선이라는 생각에서다. 언젠가는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정 교수는 “풀코스 마라톤이 하프코스 마라톤보다 건강에 더 좋다는 의학적 근거를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며 웃었다.
넷째, 러닝 전용 제품을 쓴다. 정 교수는 “안전한 운동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정 교수 또한 처음에 아무 운동화나 신었다가 발가락에서 피가 나고 물집이 잡힌 적이 있다.
대체로 30분 이상 뛰었을 때 발이 아프다면 전문업체에서 신발에 대해 상담해 볼 것을 권했다. 양말도 기왕이면 러닝 전용 제품을 쓴다. 그래야 신발 안에서 발이 겉돌지 않아 부상을 막을 수 있다.
[출처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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