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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색종 치료/서양인과 한국인의 차이

2020. 9. 5. 10:26

 

 

 

 

[떠오르는 베스트 닥터]<11> 노미령 강남세브란스병원 피부외과 교수
암주변 부위 좁혀 조직검사 반복… 시간 걸려도 보존효과 큰 치료 선호
서양치료제, 국내환자에겐 안맞아
한국인에 적합한 치료제 개발 목표

노미령 강남세브란스병원 피부외과 교수는 “피부암 분야, 그중에서도 흑색종은 서양인과 한국인의 발생 양상이나 치료 효과가 아주 다르다”고 했다. 노 교수는 ‘한국형 피부암’의 치료법과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강남세브란스병원 제공

 

《손발 바닥에 잘 생기는 암이 있다. 손톱과 발톱에도 이 암은 발생한다. 흑색종이다. 한국에서는 흑색종 환자의 상당수가 이 부위에 암이 생긴다. 흑색종은 피부암의 일종이다. 피부암은 기저세포암, 편평세포암 등 여러 종류로 나뉜다. 그중에서도 악성 흑색종이 가장 치료가 어렵다. 서양에서는 흑색종을 유발하는 가장 큰 원인이 자외선이다. 자외선에 노출된 피부에서 유전자 변형이 일어나 암이 생긴다. 한국에서도 똑같은 원리로 흑색종이 발병하기도 한다. 하지만 신발과 양말로 꽁꽁 감싼 발끝까지 자외선이 미쳐 암을 유발한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 “환자 피부 최대한 살릴 수 있게 수술”

노미령 강남세브란스병원 피부외과 교수(44)는 피부종양과 피부질환을 전문으로 다룬다. 노 교수 환자의 40%가 종양 환자다. 노 교수는 “발가락이나 발바닥에 가해진 만성적 자극, 혹은 외상이 원인이 돼 흑색종이 생길 수 있다”고 했다. 국내 의학자들이 그동안 ‘임상적으로’ 밝혀낸 사실인데, 명백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노 교수는 과학적으로 원인을 찾으려 한다. 지난해 말부터 동물실험을 진행 중이다. 흑색종 세포를 쥐의 등, 발바닥, 혓바닥 등에 투입한 뒤 경과를 살피고 있다. 실험 결과는 2년 후면 나올 것으로 보인다. 그때가 되면 ‘한국형 흑색종’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완벽하게 밝혀낼 수도 있다.

1990년대 이전만 해도 피부암은 한국인에게 생소한 질병이었다. 흑색종에 걸리면 발을 절단했다. 이런 치료법이 옳을까. 노 교수는 전공의 시절이던 2006년, 이와 관련한 논문을 국제 저널에 게재했다. 흑색종 환자 70여 명을 대상으로 발을 절단한 그룹과, 보존 치료를 한 그룹으로 나눠 생존율을 비교한 결과 거의 차이가 없었다는 내용이다. 무턱대고 발을 절단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입증한 셈이다.

 


보존 치료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가 암에 걸린 부위 주변을 광범위하게 절제하는 ‘광역절제술’이다. 둘째가 ‘모즈수술’인데, 개발자인 미국 외과 의사 모즈의 이름을 땄다. 노 교수는 모즈수술을 선호한다. 수술과 검사를 동시에 하는 방법이다. 암 주변 부위를 좁혀서 조직을 떼어내 1차 검사를 진행한다. 검사 결과 암 세포가 더 퍼져 있을 것으로 의심되면 부위를 더 넓혀 조직을 추가로 떼어낸다. 이런 식으로 짧게는 2, 3회, 길게는 5, 6회 조직을 떼어내고 검사하는 것을 반복한다. 치료 시간이 다소 길어진다는 단점이 있지만 피부를 최대한 살려낼 수 있다는 장점이 크다.


흑색종의 양상이 서양과 다르기에 한국형 치료법도 달라야 한다. 노 교수는 2015년, 서양 흑색종 치료제가 한국인에게 적합하지 않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280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서양의 약물이 한국인에게는 효과가 없었던 것.

 

 

최근 여러 암 치료에서 두드러지게 성과를 내는 면역치료제도 마찬가지다. 서양 흑색종 환자에게는 50∼60%의 치료 효과를 보이지만 한국인에게는 20%에 불과하다. 한국인에게 적합한 약물 개발도 절실하다는 뜻이다. 노 교수는 “한국인의 피부암에 적합한 치료법과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이 궁극적 목표”라며 이와 관련한 몇몇 연구를 계획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선천성 모반도 수술 필요”

선천성 모반은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점이다. 노 교수의 환자 중 40% 정도가 선천성 모반 등 피부질환 치료를 위해 찾아온다.

일반적으로 선천성 모반은 미용 목적의 치료로 여겨진다. 레이저 치료를 하는 의사들이 많다. 노 교수는 이런 치료법에 반대한다. 노 교수는 선천성 모반 환자 67명을 12년 동안 추적했다. 지난해 2월 그 결과를 국제 저널에 논문으로 발표했다. 노 교수는 “놀랍게도 레이저 치료를 하면 5∼10년 후 다시 반점이 생기는 사례가 많았다”고 말했다.

2002∼2005년 치료했던 초등학생 환자 A 양이 대표적 사례다. 이 기간에 A 양은 레이저 시술을 15회 받았다. 반점이 사라지는가 싶더니 8년이 지난 후 재발했다. 노 교수는 “모반 세포가 깊이 뿌리박혀 있어 레이저가 도달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노 교수는 수술 치료로 접근했다. 2014년 당시 10세 소녀 B 양은 뺨에 5cm 크기의 모반이 있었다. 노 교수는 모반 부위를 절개한 후 잡아당겨 봉합했다. 모반의 크기가 조금 줄어들었다. 이런 식으로 6개월마다 총 3회 수술을 했다. 그 결과 모반이 모두 사라졌다.

다만 수술 흉터가 남는 게 문제였다. 이 흉터가 얼굴 같은 곳에 그대로 남으면 자신감이 떨어지고, 심하면 대인기피증까지 생기는 경우가 있다. 흉터 치료가 단순한 피부 미용 분야가 아닌 이유다.

사실 노 교수는 수술 전부터 이 점을 감안한다. 흉터의 생김새를 예측하고 수술을 설계한다. 웃거나 찡그릴 때 나타나는 주름의 결에 따라 피부를 절개한다. 수술 후 한 달 이전에 흉터 치료를 시작한다. 먼저 상처 회복을 도와주는 테이프를 일주일 정도 붙인다. 그 다음에는 실리콘 겔 형태의 연고를 바른다.

이런 식으로 치료를 하다 보면 반점은 사라지고 선 형태의 흉터만 남는다. 바로 이때 레이저 치료를 한다. B 양도 마찬가지. 주름의 결에 맞춰 2회 레이저 치료를 했다. 지금은 흉터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사실 흉터를 완벽하게 없애는 것은 현대의학에서 불가능하다는 게 노 교수의 설명이다. 눈에 보이지 않게 최대한 숨기는 것. 그게 가장 효과적인 흉터 치료인 셈이다

 

[출처 : 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