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유재욱의 심야병원(65)
코로나바이러스가 인간 사이에서 전염되는 경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감염자가 기침할 때 나온 분비물 속의 바이러스가 다른 사람의 점막에 닿아서 감염된다. 또 다른 경로는 바이러스에 오염된 손으로 눈이나 점막을 만졌을 때 감염된다. 바이러스는 섬유 등 무른 조직보다는 딱딱한 표면 위에서 오랫동안 생존할 수 있기 때문에 환자가 만졌던 문고리, 엘리베이터 버튼, 스위치, 컴퓨터 자판기, 전화기 등을 만지면 감염이 된다. 미국의 한 대학의 실험 결과 한 명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4시간 만에 같은 건물에 있는 사람들 절반의 손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우한폐렴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수시로 손을 닦고, 손으로 얼굴을 만지는 일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 그래서 요즘 마스크와 손 세정제가 동이 나고, 물건을 사재기하는 볼썽사나운 일까지도 일어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코로나바이러스를 죽이는 항균력을 가진 구리(銅)가 재조명을 받고 있다.
구리는 2008년 미국 환경보호국에서 항균작용을 하는 금속으로 지정한 첫 번째 금속이다. 실제로 미국의 한 병원에서 구리를 사람의 손이 많이 닿는 곳에 사용했더니 병원 내 감염률이 58%나 떨어졌다는 보고가 있다. 비슷한 결과가 국내의 한 대학병원에서도 나왔는데 병원 내 문손잡이, 개수대, 침대 난간을 구리 재질로 바꿨더니 병원 내 2차 감염이 줄었다는 보고가 있었다. 영국, 프랑스, 덴마크 등 선진국에서는 병원에서 구리를 사용하는 곳이 많고, 일본에는 구리로 만든 병원이 있을 정도로 구리의 항균작용은 인정받고 있다.
영국의 사우스햄프턴배대학의 빌 키빌 박사는 구리의 세균을 죽이는 ‘항균작용’에 대해서 연구했다. 특히 이번 우한폐렴의 원인균과 유사한 코로나바이러스(229E)로 실험을 진행했는데, 세라믹 타일이나 유리 등 다른 물질의 표면에서는 최소 5일 이상 감염성을 유지했던 바이러스가 구리 위에서는 급속하게 파괴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구리가 항균작용을 하는 이유는 구리가 산화될 때 산소를 빼앗아 바이러스에 구멍을 뚫고 핵산을 완전히 파괴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멸하면 바이러스가 돌연변이를 일으키거나, 저항성을 가질 가능성이 완벽하게 제거된다. 빌 키빌 박사는 “호흡기 바이러스는 다른 어떤 감염원에 비해 전 세계적으로 사망률이 높고, 새로운 호흡기 바이러스의 진화와 아울러 예전 바이러스도 재출현해 인간에게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고 진단하고, “항바이러스 처치를 하지 않고도 구리 자체로 이 같은 감염 확산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고대 우리의 선조들은 이미 구리가 항균작용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4000년 전 고대 이집트에서는 구리를 오염된 물을 정화하는데 이용하고 그리스, 로마 사람들은 구리를 화상과 감염증 치료에 이용했다.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히포크라테스는 기원전 400년경 하지정맥류와 족부궤양 치료 등에 구리를 사용한 기록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궁중에서도 왕의 수라에 독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놋그릇이나 놋수저를 사용했다고 한다.
구리는 인류를 위협하는 변형된 바이러스의 공격이나, 첨단 의학을 무력하게 만드는 ‘슈퍼박테리아’의 원내 감염을 막을 수 있는 대안으로 발전하리라 기대한다. 구리의 원소기호는 Cu다. 밀레니얼 세대들에게 ‘CU’는 SNS상에서 흔히 “See you(다시 만나요)” 할 때 쓰는 말이다. CU 말 그대로 구리는 항상 곁에 두고 만나고 싶은 고마운 금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