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c.(기타)/History of man (인물사)

손빈

2019. 3. 14. 10:41

병법의 대가 손빈, 개밥 먹으며 복수의 칼 갈다

손빈의 스승 귀곡자는 제자의 운명을 예견하고 '무릎 아래를 잘라낸다'는 뜻의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림 바이두 백과사전]

손빈의 스승 귀곡자는 제자의 운명을 예견하고 '무릎 아래를 잘라낸다'는 뜻의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림 바이두 백과사전]

 
일찍이 한신은 가랑이 밑을 지나가는 굴욕을 참고 큰일을 이뤘다지만 여기 그보다 훨씬 더 잔혹한 치욕을 견뎌낸 사람이 있다. 『손빈병법』의 저자 손빈(孫臏). 그는 춘추전국시대를 통틀어 손에 꼽힐 만큼 고난의 삶을 살았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었고 끼니를 구걸하며 하루하루를 연명하던 것도 모자라 발을 잘라내고 얼굴에 먹물로 죄목을 새겨 넣는 형벌을 받은 것이다. 손빈의 이름 ‘빈(臏)’은 무릎 아래를 잘라낸다는 뜻으로 스승이었던 귀곡자(鬼谷子)가 그의 운명을 예견하고 지어주었다고 한다.
 
도대체 그는 왜 이토록 비참한 일을 겪어야 했을까? 전국시대의 기인 귀곡자의 제자가 되어 학문을 배우던 시절, 손빈의 옆에는 방연(龐涓)이라는 사제(師弟)가 있었다. 출세하겠다는 야심으로 똘똘 뭉쳐 있던 방연은 능력이 뛰어난 손빈을 질투했는데 그가 자신의 앞길에 방해가 될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위나라에 등용된 뒤 손빈을 추천한 것도 그를 제거하려는 흉계였다. 방연은 손빈이 적국과 내통했다고 모함하여 위와 같은 형벌을 받게 한다.
 
손빈은 절망했다. 평생을 앉은뱅이에 흉측한 얼굴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삶의 의욕을 잃어버렸다. 그런데 다행인 것인지 그는 자신이 벌을 받게 된 이유를 알게 된다. 믿었던 방연이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이라는 것을. 그는 복수를 다짐했다. 손빈은 미친 사람인 척하며 때를 기다렸다. 돼지우리에서 잠을 잤고 개밥을 먹었다. 혼잣말로 중얼거리다가 울고 웃고를 반복했으며 아무 곳에서나 쓰러져 잠을 잤다. 사람들은 모두 그가 정말로 정신이 나갔다고 생각했다.
 
춘추전국시대 국가 중에서도 막강했던 일곱 나라인 전국 7웅의 지도(왼쪽)과 이 시기 방연과 손빈의 대결에 초점을 맞춘 한글 소설 『손빈전』(오른쪽). 손빈은 제나라에서 뛰어난 전략가로 활약하며 위나라를 물리친다. [사진 Wikipedia, 국립중앙박물관]

춘추전국시대 국가 중에서도 막강했던 일곱 나라인 전국 7웅의 지도(왼쪽)과 이 시기 방연과 손빈의 대결에 초점을 맞춘 한글 소설 『손빈전』(오른쪽). 손빈은 제나라에서 뛰어난 전략가로 활약하며 위나라를 물리친다. [사진 Wikipedia, 국립중앙박물관]

 
그리하여 그에 대한 방연의 감시가 소홀해지자 손빈은 모국 제(齊)나라로 탈출한다. 제나라에 온 손빈은 제나라의 재상이자 명장 전기(田忌)의 휘하로 들어갔다. 군사(軍師)가 된 그는 뛰어난 용병술과 전략으로 제나라 군대를 일약 강군으로 만든다. 특히 상대방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바탕으로 자원을 효과적으로 배치하여 승리를 끌어냈으며, 빈틈을 급습해 적을 혼란에 빠뜨리는 탁월함을 보였다.
 
그리하여 기원전 340년, 방연과 전장에서 마주한 그는 최후의 결전을 벌인다. 이때 손빈은 제나라 군대가 마치 위나라 군대에 겁을 먹고 후퇴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연출했는데, 여기서 유명한 ‘감조지계(減竈之計)’가 펼쳐진다. 감조지계란 밥을 지어 먹은 흔적을 줄인다는 뜻이다. 처음 제나라 군대를 뒤쫓던 방연은 10만 명분의 아궁이가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제나라의 군력이 만만치 않다는 생각에 조심스러운 마음을 가졌다.
 
그런데 계속 추격하다 보니 취사 규모는 5만 명, 3만 명으로 갈수록 줄어들었다. 병기와 전차도 버려진 채 나뒹굴고 있었다. 이에 방연은 점점 방심하게 되었고 제나라 군대는 오합지졸에 불과하다며 얕잡아봤다. 그래서 하루빨리 제나라군을 섬멸하겠다는 조바심에 제대로 살피지도 않고 그저 맹렬하게 좇아갔다. 하지만 이것은 손빈의 계책이었다. 방연이 오판하도록 상황을 꾸민 것이다. 결국 위나라 군대는 마릉산 협곡에서 손빈의 매복에 걸려 전멸했고 방연도 자결로서 최후를 맞는다.
 
만약 손빈이 절망을 견디다 못해 삶에 대한 의지를 잃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방연에 대한 복수심에 섣불리 움직였다면 어떻게 됐을까? 병법가로서 손빈은 상대방의 역량과 형세를 면밀히 분석하고 유리한 전장 환경을 구축하였으며, 상대의 심리를 이용하여 전쟁의 규칙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는 특징이 있다. 그가 치욕을 딛고 일어나 복수를 완성한 과정도 이와 같았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감정에 흔들리지 않고 차분히 때를 기다린 것. 손빈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다.



[출처: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