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제21대 왕 영조는 당시 영의정이자 소론의 거두였던 이광좌에게 “화(火)가 오를 때에는 머리가 아프고 눈에 무엇이 가린 것 같다”고 자신의 화증(火症)을 설명하면서 그 치료법을 물었다. 이광좌는 이렇게 답한다.
“신이 봉조하 최규서(崔奎瑞, 경종 때 영의정 역임)의 말을 들으니 눈을 감고 정좌하여 제하(臍下)에 생각을 집중하거나 혹은 용천혈(涌泉穴)을 문지르면 시간이 흐른 뒤에 기가 또한 따라서 내려간다는 것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영조가 “발바닥의 용천혈을 문지르면 정말 기를 내릴 수 있느냐”고 다시 묻자 이광좌는 “퇴계 이황과 송나라 시인이자 정치가인 구양수가 효험이 큰 것이라고 권장하였다”고 답변한다. 이황의 ‘퇴계집’에는 그에 대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언급됐다. 1549년 퇴계는 넷째 형 이해에게 보낸 안부 편지에서 심장의 화를 다스리는 방법으로 발바닥 마찰을 권했다.
“용천혈은 발바닥 가운데 있는데 모든 맥이 모이는 곳으로 심장과 통한다. 무릇 열이 발생하는 것은 모두 심화가 위로 타오르고 신수(腎水)가 아래로 가라앉기 때문이다. 일단 몸에 열이 오르기 시작하면 즉시 손으로 두 발바닥 가운데를 마찰한다. 혹 두 발바닥을 마주하여 서로 마찰하기도 한다. 천 번 만 번을 비벼 온몸에 흥건히 땀이 흐를 때까지 하면 비록 요원의 불길과 같은 열도 한 번에 평온을 찾을 수 있다.”
퇴계는 20대 주역에 심취했다가 건강을 크게 해쳤다. 이후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많은 일을 했다. 경북 영천 한의원에서 한의학을 배우고 등산을 했으며 투호도 즐겼다. 단학의 경전인 참동계를 수련하기도 했다. 치료보다 예방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퇴계는 양생법을 자세히 소개한 ‘활인심방’이라는 의서에 심취해 직접 필사도 했다. 이런 각고의 노력 덕분에 젊은 시절 잔병치례로 고생했던 퇴계는 일흔 살까지 건강하게 살며 장수를 누렸다.
결혼 첫날밤 전 신랑의 발바닥을 때리는 풍속도 발바닥의 용천혈과 연결된 신장을 자극해 신랑의 정력을 북돋우려는 한의학적 발상이란 점을 감안하면 천연비아그라가 발바닥에 숨어있는 셈. 귀와 신장이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점을 감안하면 발바닥 문지르기로 얻어지는 또 다른 이득은 현대의 난치병, 이명의 감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