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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소설만 쓴 후 평생 절필한 소설가

2018. 10. 27. 12:21

 

 

한 권의 소설만 쓴 후 평생 절필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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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하퍼 리는 1960년 20세기 최고의 베스트셀러라 불리는 <앵무새 죽이기> 를 출간한 뒤 오랫동안 차기작을 쓰지 않았다.
작가 하퍼 리는 1960년 20세기 최고의 베스트셀러라 불리는 <앵무새 죽이기> 를 출간한 뒤 오랫동안 차기작을 쓰지 않았다.
[토요판]혼수래 혼수거

20. 미국 작가 넬 하퍼 리(Nelle Harper Lee·1926~2016)

미국 작가 하퍼 리는 그의 이름보다 그가 쓴 작품으로 더 유명하다. 이름을 듣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도 대개 퓰리처상 수상작 <앵무새 죽이기>는 알고 있다. 1960년 출간돼 지금까지 4천만부 이상 팔렸다는 이 책은 소위 미국에서 성경 다음으로 영향력 있는 책으로 꼽힌다. 2016년 그가 89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을 때, 작가의 고향인 미국 앨라배마주 법원은 흥미로운 판결을 내린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하퍼 리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유언장 비공개를 명령한 것. 첫 작품 <앵무새 죽이기>로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둔 뒤, 고향에서 은둔해 살았던 작가의 삶을 존중하는 판결이었다.

1926년 미국 앨라배마주 남부에서 태어난 하퍼 리는 어린 시절 멜빵바지를 즐겨입는 ‘톰보이’였다. 집에서는 넬로 불렸다. 나무타기, 땅바닥에서 뒹굴기가 취미였고, 친구들을 괴롭히는 남자아이를 ‘패던’ 말괄량이였다. 이 시절을 함께 보낸 이는 <인 콜드 블러드>, <티파니에서 아침을> 등을 쓴 작가 트루먼 카포티다. 넬과 트루먼은 인구 6천 명 남짓한 작은 도시 먼로빌에서 같이 자랐다. 시골 소꿉친구 둘이 자라서 미국 문학의 슈퍼스타가 된 셈이다. 1930년대 대공황 시기 미 남부 작은 마을 메이콤을 배경으로 한 <앵무새 죽이기>는 상당 부분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6살 소녀 주인공 스카웃의 아버지 애티커스처럼 하퍼 리의 아버지도 변호사였다. 그의 오랜 이웃도 “<앵무새 죽이기>는 확실히 넬의 어린 시절을 그대로 옮겨다 놓았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어요”라고 말할 정도였다. 스카웃과 온 동네를 뛰어다니며 법정에 숨어들고, 괴상한 이웃을 같이 염탐하는 이웃집 소년 딜이 바로 트루먼 카포티를 모델로 한 것이다.

작가에게 데뷔작이 대표작이 된 것은 행운일까, 불행일까? 적어도 하퍼 리에게는 성공이 덫이 되었다. 무명작가의 작품이었지만 책이 출간되자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초판 발행 부수가 200만부를 돌파하는 기록을 세웠고, 출간 이듬해 퓰리처 상을 수상했다. 서른네 살 젊은 작가는 차기작을 준비했지만, 유명세와 압박감에 시달리다 결국 아무 것도 출간하지 못했다. 2015년 <앵무새 죽이기>의 습작 격인 소설 <파수꾼>이 세상에 드러나기 전까지, 55년간 그야말로 “그의 펜은 얼어붙어” 버렸다. 어릴 적 조울증을 앓기도 했던 그는 주목받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1964년 뉴욕 <공영라디오>와의 인터뷰를 마지막으로 언론과의 접촉도 모두 끊고, 고향 먼로빌로 내려가 “바보가 되느니 침묵하는 게 낫다”는 말을 실천하며 여생을 보냈다.

1960년 지인의 집에 함께 있는 넬 하퍼 리와 트루먼 카포티.
1960년 지인의 집에 함께 있는 넬 하퍼 리와 트루먼 카포티.
성공은 우정도 금가게 했다. 넬과 트루먼은 어려서 뿐만 아니라 성인이 되어서도 각별한 사이를 유지했다. 트루먼은 1959년 캔자스주에서 실제로 일어난 살인사건을 취재하며 넬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대표작 <인 콜드 블러드>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1961년 넬이 퓰리처상을 수상하자 트루먼의 마음 속에 성공에 대한 질투가 시작됐다. 1966년 마침내 발간된 트루먼의 책에서, 중요한 도움을 줬던 하퍼 리는 단지 ‘비서’로 묘사됐고 둘의 사이는 틀어졌다. 다작으로 유명한 스티븐 킹은 하퍼 리를 두고 “신이 준 재능을 왜 쓰지 않는가”라고 말했지만, 성공이 그에게서 앗아간 것은 단지 ‘조용한 사생활’ 뿐이 아니었다.

[출처 :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