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보다 앞서 1905년 일본의 한 해군 장교는 러시아 발틱함대와의 일전을 앞두고 300여 년 전의 적장(敵將) 이순신의 혼령에 자신의 안전과 일본 해군의 승리를 빌기도 했다. 일본 중학교 검정교과서와 참고서 대부분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의 활약으로 자신들이 패퇴한 사실(史實)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아무리 이순신이 불세출의 명장이라고 해도 자국에 패배를 안긴 장수를 우리라면 그렇게 외경(畏敬)할 수 있을까.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보면 일본인 특유의 사생관(死生觀)과 무사도 정신의 편린(片鱗)을 엿볼 수 있다.
우리가 봐도 이순신은 한국사의 특이한 존재다. 질투심으로 똘똘 뭉친 겁쟁이 왕과 당파싸움으로 지새우며 썩을 대로 썩은 지도층, 실정(失政)으로 도탄에 빠져 무기력한 백성…. 어느 한구석 예정된 패전을 뒤집을 동력은 없었다. 더구나 지원병으로 온 명군(明軍)은 군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당나라 군대’였다. 조선군에겐 군림하면서도 왜군과는 겉으로만 싸우는 양전음화(陽戰陰和)를 일삼았고 조선 백성 수탈은 왜군 못지않았다(안영배의 ‘정유재란―잊혀진 전쟁’). 임란(壬亂)은 이순신이 없었다면 강토(疆土)가 적에게 넘어가 이후 역사가 바뀌었을 ‘이순신의 전쟁’이었다.
역사처럼 확실한 건 없다. 임란 때든 구한말이든, 로마 패망기이든 청조(淸朝) 말이든 위기는 대개 비슷한 징후를 동반한다. 무능하고 안일한 지배세력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없이 제 배만 채우는 사회 지도층, 무사안일에 빠진 국민의 분열, 그리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외세(外勢). 위기의 ‘4종 세트’다.
지금이 위기냐, 아니냐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을 것이다. 불과 넉 달 전까지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초유의 위기’라고 외쳤다. 하지만 위기의 징후라는 측면에선 지금도 달라진 것은 없다. 먼저 주적(主敵), 즉 북한의 선의(善意)에 기대어 ‘대화를 통한 평화’를 얻겠다는 청와대의 일관된 노선이 가장 불안하다. 평화를 위한 대화는 필요하지만, 그것은 적국의 악의(惡意)를 끊임없이 의심하는 토대 위에서 해야 한다. 우리가 평화를 바란다고 적도 평화를 바랄 것이란 편의적 낙관론에 빠져 ‘내가 먼저 무기를 버릴 테니, 너도 버려라’라는 식의 순진함이 불러온 실패를 우리는 숱한 역사의 페이지에서 본다.
지도층도 보수와 진보 할 것 없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고는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 사회를 9년 동안 지배하던 보수 정치세력은 국민의 버림을 받고도 왜 버림을 받았는지조차 모른다. 하다못해 국민을 속인 죄를 반성하며 이제부터 단 한 푼도 세비를 받지 않겠다는 사람조차 없다. 자기희생만이 살 길인 걸 왜 모르나.
좌우 할 것 없이 편 가르기를 일삼는 지도층에 점염(點染)된 국민들도 내 편, 네 편으로 갈렸다. 그러면서 어느새 굴종의 평화든 뭐든, 전쟁만 없으면 된다는 사회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여기에 북한 김정은의 협박도 모자라 미국 대통령까지 한미 동맹을 엿 바꿔 먹을 수 있다는 태도로 우리 안보의 뿌리를 흔들고 있다. 위기의 4종 세트에서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다.
류성룡은 임란이 끝난 후 징비록(懲毖錄)을 쓴 이유에 대해 시경을 인용해 “앞의 잘못을 징계하여 뒤의 환란을 조심한다”고 밝혔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면 역사는 반드시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게 만든다. 작금의 위기 징후들을 가벼이 보아서는 안 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