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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문법보단 자신있게 말하면 되죠

2017. 8. 26. 12:16

[영어의 몰락] 스웽글리시? 댕글리시? 문법보단 자신있게 말하면 되죠

영어 잘하는 해외 국가들의 비결

 

 

영어능력지수 상위권 유럽

1위 네덜란드 2위 덴마크 등

게르만어족 언어 유사성 높고

다인종, 언어로 개방사회 특징

노출, 사용 시간 늘리는 공교육

유아기부터 영미 방송에 노출

초등학생은 대화〮토론 위주 수업

다른 과목을 영어로 지도하기도

영어 보급률 끌어 올리려면

입시 틀로만 보는 관점 벗어나

사교육 광풍 피로감 없애야

‘왜 필요한가’ 사회적 논의 시급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 등 영어를 외국어로 가장 잘하는 나라들의 공통점은 뭘까. 게르만어족이라는 언어적 유사성보다 쉬운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며 자기표현의 욕구를 실현시켜 주는 교육시스템의 차이가 더 크다. 게티이미지뱅크

영어를 외국어로 사용하는 나라 중 가장 영어실력이 뛰어난 나라는 언제 어떻게 조사해도 그 순위가 대략 정해져 있다.

네덜란드 아니면 덴마크나 스웨덴, 그도 아니면 노르웨이나 핀란드다. 이들이 돌아가며 1위를 차지하는 식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조어(祖語ㆍ할아버지 언어)가 게르만어인 북유럽 국가라는 점. 영어는 서게르만어, 네덜란드어 스웨덴어 덴마크어 등은 북게르만어로 같은 게르만 어족(語族)에 속하며, 언어적 유사성이 크기 때문에 이 나라 국민들은 쉽게 영어를 익힌다는 게 통상의 원인 분석이다.

게르만어족이라 영어를 잘한다?

국제 영어능력 비교 지표로 자주 사용되는 스웨덴 글로벌 교육기업 EF의 영어능력지수(English Proficiency Index) 2016년 결과에 따르면, 영어 잘하는 나라 1위는 네덜란드, 2위는 덴마크, 3위는 스웨덴이었다. 그 뒤는 핀란드와 노르웨이, 룩셈부르크, 오스트리아, 독일, 폴란드 순이었다. 영어공용화 정책을 시행한 아시아의 싱가포르가 6위를 차지한 것을 제외하면, 10위권에는 게르만어족을 포함한 인도-유럽어족 국가들뿐이다.

유사한 언어를 쓴다는 점 외에도 북유럽 국가들이 최고의 영어 실력을 보이는 데에는 다른 중요한 요인들이 있다. ▦역사적으로 영국과 가까워 많은 영향을 주고 받아왔다 ▦인구 1,000만명이 안 되는 작은 나라들이라 해외 의존도가 높다 ▦일찍이 다인종ㆍ다언어 사회를 형성해 개방적 문화가 형성돼 있다 ▦기후가 춥고 거칠어 장기 해외여행이 매우 보편화했다는 것 등이다.

나아가 가장 중요한 변인은 역시 교육이다. 직업의 기술이자 생존의 방편으로 영어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국민적 공감대에 힘입어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영어교육 시스템을 만든 것이 가장 결정적 요인이다. 한국 아이들처럼 영어 태교로 시작해 문화센터 영어 뮤지컬 강좌를 듣지 않아도, 전일제 유아 영어학원(영어유치원)에 다니지 않아도, 하루에 서너 시간씩 영어학원에 붙들려 있지 않아도, 공교육을 통해 세계 최고의 영어실력을 갖추게 만드는 것이다.

읽기는 언어습득 과정에서 듣기와 말하기 다음 단계다. 듣고 말하기부터 가르치는 북유럽과 달리 한국은 읽기로 시작해 읽기로 끝나는 비효율적 입시영어만 공부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더빙 없는 영어방송으로 유아기 영어 노출

언어습득의 원리는 간단하다. 노출과 사용이다. 모국어든 외국어든 특정 언어에 장시간 노출되고, 그 언어를 매일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 언어는 저절로 구사하게 된다.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등 북유럽 5개국은 유아기에 영미권에서 제작된 TV와 라디오 프로그램을 더빙 없이 방송해 아이들을 영어에 노출시킨다. 이들 국가는 적은 인구로 시장 규모가 작은 탓에 모든 방송 프로그램들을 직접 만들지 못하고 영미권에서 사다가 틀어주는 게 일반적이다. 영미 방송 프로그램의 가장 큰 수요처 중 하나가 북유럽으로, BBC는 이 시장을 겨냥해 아예 전용 채널인 BBC 노르딕을 설립하기까지 했다. 이때 한국과 달리 유아용 콘텐츠에도 더빙을 하지 않고 자막만 입히는데, 유아들은 자막을 읽지 못하기 때문에 소리에만 노출된다. 아기들이 모국어를 읽히는 데 필요한 노출 시간으로 언어학자들이 대략 공감한 1만 시간의 영어 노출 중 상당수가 이 시기 미디어를 통해 이뤄진다.

방송산업이 발달한 한국은 자체 제작 콘텐츠의 비중이 높고, 시장규모도 큰 편이라 공중파 방송에서 이와 같은 미디어 전략을 구현하기 쉽지 않다. 한류 진작이 방송 콘텐츠 정책의 핵심 중 하나라 더욱 그렇다. 하지만 영어 조기교육에 투입되는 막대한 비용을 감안하면 실질적 영어능력 강화의 방안으로 사회적 논의는 시도해 봄직하다.

말하지 못하면 아는 게 아니다

북유럽 국가에서 정규 교육과정의 일환으로 영어를 배우기 시작하는 것은 초등학교부터다. 말하기 단계로 진입, 노출과 사용 중 사용이 본격화되는 시기라고 볼 수 있다. 교육과정의 자율성과 재량권을 학교가 갖는 북유럽에서는 학교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략 3학년 정도부터 필수과목으로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된다. 학급 규모가 작고, 교사의 영어능력이 우수하다는 것이 대화와 토론 위주의 ‘말하는 영어’를 가르칠 수 있는 토대지만, 학교 재량으로 영어 외 과목들을 영어로 가르치는 것도 비결 중 하나다. 학교에 따라 미술 같은 과목 한두 개를 영어로 가르치는가 하면 사립학교의 경우 주요 과목 대부분을 영어 몰입교육으로 진행하기도 한다.

“요즘은 한국 학교도 한 반 정원이 18명 정도인 곳이 많아요. 학령인구 감소로 실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비즈니스 프레젠테이션을 하며, 사람들을 설득하고 관계 맺을 수 영어를 얼마든지 가르칠 수 있는 환경이 돼 가고 있죠. 하지만 입시영어에서 벗어나질 못하니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교실 영어수업 풍경은 똑같은 거예요.”

주한덴마크대사관 상무관, EU 상공회의소 이사, 다국적기업 글로벌 마케터 등으로 일해온 이정민 북유럽문화원 공동대표는 “한국 학생들이 덴마크로 유학을 가면 가장 놀라는 게 구술시험의 전통”이라며 “‘말하지 못하면 아는 게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북유럽의 학문적 전통이 학교 영어수업에도 나타난다”고 말했다. 모국어든 외국어든 자신의 의견을 말로 표현하는 스토리텔링이 교육의 핵심이라는 인식이 한국과 가장 큰 차이라는 것이다. “입시영어라는 표현은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거잖아요. 심지어 요즘은 ‘대치동 영어’라는 표현까지 나오죠. 세계라는 큰 틀 안에서 영어교육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한국, 그것도 입시라는 작은 틀로만 영어를 바라보니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달라지는 게 없는 거예요.”

영어를 가장 잘하는 국가라고 해서 이 나라 국민들이 완벽하게 영어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외국어이기 때문이다. 국가 제작 관광 홍보물에 ‘세계에서 영어를 제일 잘하는 나라’라고 큼지막하게 써놓지만, 스웨덴 영어는 스웽글리시(Swedish+English=Swenglish), 덴마크 영어는 댕글리시(Danish+English=Danglish)라고 불린다. 콩글리시와의 차이는 유창하게 비문(非文)을 구사하고, 틀린 문법에 당당하다는 점이다. 교육의 목표가 모국어 수준으로 영어를 구사하는 것이 아니라 쉬운 영어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등학생들의 토론 발표 수업은 영어권 초등생 수준의 쉽고 간단한 문장들이 유창하게 구사되는 수준으로 진행된다. 영어 메뉴가 있는 식당은 드물지만, 직원이나 주인이나 영어 메뉴를 찾는 손님에게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내가 영어로 설명해 줄게”라고 답하는 이유다.

“북유럽 사람들이 영어 소통은 완전히 자유롭게 하지만, 문법과 테크닉으로 따진다면 그리 완벽하다고 볼 수는 없어요. 글로벌 사회에서 소통할 수 있는 선에서 영어를 쓰는 거죠.” 이 대표는 “중요한 것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내용, 콘텐츠, 사고의 독창성과 깊이”라며 “여기에 더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자기만의 감성이 가장 중요한 영어능력의 요소”라고 말했다.

학교 재량으로 영어몰입교육을 실행하는 스웨덴 중학교의 모습. 스웨덴 공식 웹사이트(sweden.se)

영어에 자유를 허하라

영어는 더 이상 대문자 언어(English)가 아니다. 수많은 변형들로 이뤄진 소문자 언어(englishes)다. 스웽글리시, 댕글리시가 있고, 싱글리시(싱가폴 영어), 맹글리시(말레이 영어)가 있는 것처럼 콩글리시도 소통만 된다면 장려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영어 사교육 광풍에 대한 거부감과 피로감에 크게 기대고 있는 한국인들의 ‘영어 반감’은 ‘왜 전 국민이 영어를 꼭 잘해야 하나’라는 반문으로 곧잘 이어진다. 그러나 ‘전 국민이 잘해야 하는 것’이란 틀로 접근하면, 그 답이 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한국에서 한국어로만 먹고 살기에 큰 어려움이 없는 직종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구글과 유튜브가 세계의 모든 유용한 정보들을 쥐고 있는 국경 없는 테크 시대,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좋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한 나라에서 영어로 자유로운 소통이 가능한 정도를 지표화한 것이 영어 보급률(English Penetration Rate)이다. 다국적기업들이 아시아 시장에 진출하며 허브 국가를 선정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가 이 지표다. “오랫동안 다국적 기업들을 위한 마켓 리포트를 쓰면서 한국의 영어 보급률을 5% 미만으로 쓸 수밖에 없었어요. 덴마크는 95~98% 수준이죠.” 이 대표는 “외국기업들을 한국으로 끌어오는 게 임무 중 하나였는데 결국은 늘 싱가포르로 간다”며 “리콴유 싱가포르 총리 서거일에 현장에 있었는데, 그가 엄청난 반대를 뚫고 영어공용화 정책을 시행한 게 국가경쟁력을 엄청나게 높였다는 데에 이견이 없었다”고 말했다.

반드시 다국적기업일 필요도 없고, 영어공용화 정책일 이유도 없다. 지금 하는 푸드트럭을 글로벌화하기 위해, 운영 중인 온라인쇼핑몰의 고객을 외국인으로까지 확대하기 위해 콩글리시라도 유창히 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수능 영어가 절대평가냐 상대평가냐만 따질 일이 아니다. 큰 틀에서 왜 영어를 해야 하고, 어떤 영어를 해야 하는지, 한국인들의 다양한 영어 수요를 공교육 시스템 안에서 어떻게 충족시켜줄지, 이제 접근법 자체를 달리해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다.

-한국일보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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