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암 치료하러 오지마라” 담배냄새 맡은 명의 일침
- 카드 발행 일시2023.07.12
그는 방광암을 치료한다. 재발이 잦고 수술 난도가 높은, 골치 아픈 병이다. 처음부터 손들고 선택한 길은 아니었지만, 다른 의사들이 잘 맡으려 하지 않은 일을 담당하다가 자연스레 방광암 환자들과 주로 만나게 됐다. 방광암 전문 1세대 의사이자, 방광암 명의로 불리는 서호경(54) 국립암센터 비뇨기암센터장(비뇨의학과 교수) 얘기다.
대부분의 비뇨기과 의사가 전립선암을 전공으로 선택하려 할 때, 서 교수는 방광암을 택했다. 방광암은 비뇨기과 의사니까 그냥 치료하던 시절, 서 교수는 “방광암 치료도 제대로 해야 한다. 방광암만 전문으로 보겠다”고 선언했다.
비뇨기계 암에는 신장암, 전립선암, 신우요관암, 방광암 등이 있다. 서 교수가 진료실에서 만나는 환자는 하루 80명 정도인데, 그중 70명이 방광암 때문에 온다. 서 교수에게 치료받은 환자 소개로 새 방광암 환자가 찾아오기도 한다.
“방광암 환자 생존율에 책임감”
방광암 치료는 서 교수에게 숙명처럼 다가왔다. 장으로 방광을 만드는 은사 수술을 보면서 비뇨기의학과 전공의를 지원했다. 비뇨의학과 내에서도 비뇨기 종양을 더욱 세분화해 진료하자는 제안이 나왔고 선배들이 전립선암·신장암을 맡으면서 자연스레 서 교수가 방광암 환자를 주로 보게 됐다. 세계 최고의 암센터라 할 수 있는 미국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센터에서 연수를 마치고 방광암에 대한 눈이 뜨였다. 처음엔 자의라기보다는 타의에 의한 상황이었지만, 점점 방광암에 관한 관심이 커졌다.
서호경 국립암센터 비뇨기암센터 교수는 "방광암 환자의 생존율을 올리는 데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서 교수는 비뇨기계 암 중에서도 재발이 잦고 수술 난도가 높은 방광암을 전문으로 보겠다고 선언한 1세대 의사다. 김현동 기자
“왜 명의로 불리게 됐다고 생각하느냐”는 우문(愚問)을 던졌더니 현명한 답변이 미소와 함께 돌아왔다.
방광암만 하겠다고 선언한 만큼 방광암 환자의 생존율을 올리는 데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1세대 다른 선생님들과 의기투합하고 있다. 이런 노력이 축적돼 그런 얘기를 듣는 게 아닌가 싶다.
방광암은 신장암, 전립선암과 달리 생존율이 크게 오르지 않는 대표적 암종이라고 한다.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전립선암과 신장암의 경우 5년 생존율이 최근 20년간 50~60%대에서 80% 이상으로 올랐지만, 방광암은 이 기간 70%대에 머물러 있다.
“항암제에 보험 적용하고 치료 방식 바뀌어야”
서 교수는 “비근육침습방광암(방광암의 뿌리가 근육까지 침습하지 않은 경우)의 경우 5년 생존율이 80%까지 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방광암의 뿌리가 근육까지 침습하면 5년 생존율이 50% 정도”라고 말했다. 전이되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장기 생존율이 5~10%로 뚝 떨어진다. 서 교수는 “골반을 벗어난 림프절 전이라거나 간·폐·뼈 등에 전이되면 예후가 좋지 않다”고 했다.
서 교수는 “근육침습방광암의 경우 수술 전 항암 치료를 하는 게 표준치료”이라면서도 “이를 도그마(dogma)적으로 해석하는 치료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방광암이 근육까지 안 가면 내시경 수술, 근육까지 가면 방광 절제 식으로 해왔는데 결국 방광을 절제하게 될 환자는 빨리 방광을 제거하는 게 좋다”고 했다. 그러면서 “근육 침습이 없는 비근육침습 방광암도 고위험군이라면 내시경 수술도 4, 6주 후 한 번 더 하는 게 좋다는 점을 강의 등으로 알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방광암에서 하는 내시경 수술은 암 수술치고 약하게 하는 겁니다. 그래서 수술했던 자리를 한 번 더 자르기를 권유하는데 의사 입장에선 환자에게 수술 또 하자고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환자가 이미 받은 내시경 수술이 잘못돼서 그런 건가 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해야 한다는 것이죠.
근육침습방광암에서 수술 전 항암 치료가 표준으로 자리 잡기까지 그의 노력이 컸다. 서 교수는 “의사들이 방광 들어내는 수술도 힘든데 항암제를 쓰고 환자 컨디션이 안 좋을 때 수술을 안 하고 싶어 한다. 합병증이 두려운 것도 있다”며 “그래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왔고 이를 급여화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최근에는 메이저 병원에서 대부분 수술 전 항암제를 쓰고 있다”고 했다.
전이 방광암은 항암 치료에 비교적 잘 반응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효과가 오래가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는 게 서 교수 설명이다. 서 교수는 “최근 바벤시오(아벨로맙)로 항암 치료한 뒤 효과가 좋은 군에서 추가로 사용해 생존율이 비약적으로 오르고 있다”며 “바벤시오 같은 약이 빨리 급여화돼야 전체 환자의 생존율이 오른다”고 말했다.
서호경 교수는 "내시경 수술 후 4, 6주 후에 한 번 더 내시경 수술을 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김현동 기자
방광암, 흡연이 주원인
2020년 암등록통계에 따르면 방광암은 남성암의 9위를 차지한다. 60, 70대에 자주 발생한다.
방광암의 가장 흔한 증상은 무통성육안적 혈뇨다. 통증은 없는데 눈에 보이는 피가 소변과 함께 배출되는 것이다. 서 교수는 “때에 따라 간장에 물 탄 것 같은 짙은 색이 나타나기도 한다”며 “한 번의 혈뇨일지라도 비뇨의학과에 가서 검사를 받아야 한다. 특히 남자이면서 담배를 피우고 40세 이상이라면 육안적 혈뇨가 아닌, 현미경적 혈뇨로 확인돼도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많은 환자가 병원에 늦게 오는 이유가 한 번 소변에 피가 나오고 그 이후로는 멈춰 병이 괜찮아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서 교수는 지적했다. 그는 “암이 자라면 혈관 벽이 약해져 작은 자극에도 피가 잘 나게 된다. 소변에 피가 나오는 정도와 방광암 정도가 일치하지는 않아 피가 멎었다고 암이 좋아진 것도 아니고 피가 많이 난다고 암이 심한 것도 아니다”고 설명했다.
서호경 교수는 "전립선염과 방광염 치료가 잘 안되고 재발하면 비뇨기과에 가서 꼭 검사받으라"고 조언했다. 김현동 기자
방광염과 방광암 차이
서 교수는 “여성은 요도의 길이가 짧아 남자보다 방광염을 흔히 경험한다”며 “남자는 바로 비뇨기과로 가서 검사받는데 여성은 방광염이라 생각하고 산부인과 치료를 하다 암이 근육까지 진행돼서 오는 사례가 많다. 남성과 비교해 병기가 높은 측면이 있다”고 했다.
방광 내시경 관련 이미지. 자료 국립암센터
방광암 오해와 진실
서 교수는 “방광암에서 식습관보다 더 중요한 것은 흡연자의 경우 금연”이라고 재차 강조하며 “예후에서도 차이가 있다는 보고가 있는 만큼 금연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서 교수는 환자가 담배 끊길 힘들어하면 암센터 금연학교를 추천한다. 끊었다는 환자에게서 담배 냄새가 나면 “담배를 피우면서 암 치료하러 오실 거면 안 오셔야 합니다” 이렇게 따끔하게 혼내기도 한다. 서 교수는 “환자 본인은 암과 관련된 걸 하시면서 저한테 암을 치료해 달라는 게 맞지 않는 거 같다고 하면 대부분 ‘알겠다, 당장 끊겠다’고들 한다”고 말했다.
서호경 교수는 "방광암에서 식습관보다 더 중요한 것은 흡연자의 금연"이라고 강조했다. 김현동 기자
재발률 높은 이유는
방광암은 재발률이 높은 암이다. 방광을 보존하며 치료하는 비근육침습방광암의 재발률은 70% 정도 된다. 서 교수 환자 중에는 5번 넘게 재발한 사례가 있다.
재발률이 높은 이유에 대해 “내시경으로 보이는 암을 다 제거한다 해도 발암물질로 이미 방광의 점막세포에 변성이 생기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언제든 암이 생길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시경 때 미처 관찰하지 못한 암이 남아서 재발하는 경우도 있다.
서 교수는 “최대한 암을 제거하고 그 주위 약 1㎝를 더 제거하는데, 재수술을 해보면 암이 남아 있을 확률이 30% 정도 된다”며 “손가락 모양으로 파고들어 간 방광암은 밑바닥에 암이 남아 있을 확률이 높다”고 했다. 그러면서 “완전히 절제했다고 하더라도 4, 6주 후 내시경 수술을 한 번 더 진행하는 것이 표준치료인 이유”라며 “그 후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BCG(결핵균) 치료를 추가로 진행한다”고 했다. 암 수술의 대원칙은 암을 건드리지 않고 떼어내는 것인데, 방광암 내시경 수술은 암을 자르면서 하기 때문에 이때 떨어져 나간 암세포가 떠다니다 어딘가 붙어 다시 자라게 되는 것도 재발이 잦은 이유라고 했다.
근육침습방광암의 경우 방광을 제거해도 이전에 시행한 컴퓨터단층촬영(CT)에는 보이지 않는 미세전이가 동반되어 있어 약 50%에서 재발한다고 알려져 있다.
정근영 디자이너
방광암 치료는 어떻게
근육침습방광암의 표준치료는 방광을 적출하는 것이다. 광범위한 상피내암이 동반하지 않으며, 콩팥이 붓는 수신증이 없고 종양 크기가 3㎝로 작거나 내시경수술로 보이는 종물을 완전히 제거한 환자, 항암치료에서 종물이 완전히 없어진 경우는 내시경수술, 방사선, 항암 치료를 함께 사용해 방광을 보존할 수도 있다. 비근육침습방광암은 내시경으로 혹을 제거하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방광에 항암제를 넣는다.
다만 비근육침습방광암이라고 해도 근육침습방광암으로 발전할 위험이 높은 경우, 내시경 수술과 BCG 치료에 실패하는 경우엔 방광을 제거해야 한다. 비근육침습방광암에서 근육침습방광암으로 진행하고 난 뒤 방광을 들어내면 비근육침습방광암일 때 방광을 제거한 경우보다 재발할 확률이 증가한다.
방광암 수술이 어려운 이유
방광암 수술은 난도가 높다. 남자는 방광을 제거하면서 전립선과 정낭도 떼어내야 해 기본적으로 전립선암 수술 과정을 거친다. 여성은 방광뿐 아니라 자궁, 난소, 나팔관과 질의 일부를 들어낸다. 자궁경부암 수술과 유사한 수술을 하는 셈이다. 여기에 방광암이 먼저 전이하는 골반 림프절을 제거한다. 이후 소변을 모아두기 위해 소장을 잘라 잇는 외과적 수술까지 더해진다. 또 장으로 방광을 만들게 되면 다시 요관, 요도와 연결해야 한다.
서 교수는 “수술이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일종의 종합선물세트”라며 “순서나 붙이는 방향이 조금 달라지면 나중에 전부 문제가 생겨 매 과정을 잘해야 한다”고 했다. 장으로 방광을 만드는 수술을 하면 4~5시간, 소변 주머니를 다는 회장도관조성술을 하면 3~4시간 걸린다. 이런 수술을 서 교수 혼자 처음부터 끝까지 한다. 서 교수는 “다른 스태프도 나만큼 바쁘기 때문에 도와주기 힘들다”고 했다. 방광을 제거하고 서 너 건의 내시경 수술을 하고 나면 녹초가 된다고 한다. 그는 “장시간 수술하려면 컨디션 관리를 잘해야 한다. 코어 근육을 강화하기 위해 필라테스를 4년째 해오고 있고, 등산도 즐겨 한다”고 말했다.
방광 내시경 수술이 중요하다. 방광 내시경 수술은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위해 필수적이다. 보이는 혹을 모두 제거하고 밑바닥 1, 2㎜를 더 잘라 암 뿌리가 근육까지 갔는지 안 갔는지 잘 봐야 한다. 근육침습방광암에서는 어떤 경우 방광을 보존할지 판단하고 방광을 제거할 때는 요루를 만들 건지 장으로 방광을 대체할 건지 판단하는 것도 중요하다.
서호경 교수는 4,5시간씩 수술을 간호사 1명과 함께 한다. 코어 근육을 강화하기 위해 필라테스를 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방광 적출 후에는
서 교수는 “회장도관조성술도 좋은 수술이고 환자 만족도가 높다”며 “소장으로 방광을 대치한 후 적응하지 못해 다시 떼고 회장도관술을 하기도 한다”고 했다. 서 교수는 “아랫배 힘을 이용해 잔뇨를 잘 배출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소변줄로 남은 소변을 잘 빼내기라도 해야 하는데 둘 다 잘 못 하면 신우신염이 생기고 신장 기능이 나빠질 수 있다”며 “적어도 소변줄을 넣어 남아 있는 소변을 잘 빼낼 환자들이 장으로 방광을 대체할 수 있다”고 했다.
서 교수는 오전에 30명, 오후에 40~50명 정도의 환자를 진료한다. 이렇게 보려면 전날 예습이 필수라고 한다. 서 교수는 “80명 환자를 보면서 방광내시경도 20~30개 정도 한다. 예습을 안 하면 불가능하다”며 “전날 퇴근하기 전에 2, 3시간 차트 보고 영상 검사 결과가 있으면 봐서 미리 기록해 놓는다”고 했다. 진료를 준비하는 노력과 함께 ‘손기술’도 훈련해야 한다. 초기에는 소장으로 방광을 만드는 기술과 공간 감각을 익히려 긴 천에 공구르기 바느질을 수차례 했다고 한다. 아직도 까다로운 수술이 예상되면 영상검사를 보면서 머릿속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수술 과정을 수십 번 시뮬레이션한다고 한다.
서 교수는 “수술하기 전 항암치료를 하고 방광을 제거하는 게 표준치료인데 일부 환자는 이런 도움을 받고 일부 환자는 전혀 도움을 못 받은 채 수술 시간만 늦춘다”며 “어떤 환자에게 수술 전 항암을 하는 게 도움이 되는지 연구하고 있다”고 했다.
방광암 명의의 당부
서 교수는 “금연을 포함해 예방하고, 가능한 초기에 발견하는 게 중요하다. 방광을 보존할지 제거할지 잘 판단해 방광 보존을 선택해도 치료에 실패할 것 같으면 최대한 빨리 방광을 제거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비근육침습방광암 환자 중엔 다른 병원에서 ‘방광에 종양이 꽉 찼으니 방광을 들어내자’는 얘기를 듣고 서 교수를 찾아와 방광을 보존할 수 있었던 환자도 있다고 한다. 서 교수는 “환자가 방광을 보존하고 싶어 해 힘들게 방광에 있는 모든 혹을 다 제거했고 다행히 재발 없이 BCG 치료하며 잘 유지되고 있다”고 했다.
자타 공인 방광암 명의가 된 서 교수는 환자들에게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고 했다.
암이라는 얘기 듣고 치료를 포기하시는 분들이 가끔 있거든요. 내 나이 70인데 살면 얼마나 살겠느냐면서…. 그런데, 결국 방광암이 심해져서 소변에 피가 나오고 소변 내려가는 길이 막혀 요독증에 빠져 응급실에 오십니다. 제 환자 중에 90세에 전립선암으로 수술받고 95세에 방광암이 생겨 고민 끝에 방광을 제거했는데 결과가 좋았던 분도 있습니다. 100세에 찾아와 ‘서 생 아니면 고생하다 죽을 뻔했다’며 감사해 했습니다. 잘 치료될 거란 희망을 갖고 꼭 치료받으시길 바랍니다.
[출처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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