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terature(문학)/Poem(시)

낡은 구두 / 이해인

2020. 6. 9. 21:31

 

낡은 구두  / 이해인

 

내가 걸어다닌 수많은 장소를

그는 알고 있겠지

내가 만나 본 수많은 이들의 모습도

아마 기억하고 있겠지


나의 말과 행동을 지켜 보던 그는

내가 쓴 시간의 증인

비스듬히 닳아 버린 뒤축처럼

고르지 못해 부끄럽던 나의 날들도

그는 알고 있겠지


언제나 편안하고 참을성 많던

한 켤레의 낡은 구두

이제는 더 신을 수 없게 되었어도

선뜻 내다 버릴 수가 없다


몇 년 동안 나와 함께 다니며

슬픔에도 기쁨에도 정들었던 친구

묵묵히 나의 삶을 받쳐 준

고마운 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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