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음의 길 위에서 / 이해인
어제보다는
좀더 잘 들으라고
저희에게 또 한 번
새날의 창문을
열어주시는 주님
자신의 안뜰을
고요히 들여다보기보다는
항상 바깥일에 바삐 쫓기며
많은 말을 하고 매일을 살아가는 모습
듣는 일에는 정성이 부족한 채
'대충' '건성' ' 빨리' 해치우려는
저희의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
가장 가까운 이들끼리
정을 나누는 자리에서도
상대방의 말을 주위 깊게 듣기보다는
각자의 생각에 빠져
자기 말만 되풀이하느라
참된 대화가 되지 못하고
독백으로 머무를 때도 많습니다
- 우린 참 들을 줄 몰라
- 왜 이리 참을성이 없지?
- 같은 말을 쓰면서도 통교가 안 되다니
잘 듣지 못함을 반성하고 나서도
돌아서면 이내 무디어지는
저희의 어리석음과 습관적인 잘못은
언제야 끝이 날까요
정확히 듣지 못해
약속이 어긋나고
감정과 편견에 치우쳐
오해가 깊어갈 때마다
사람들은 저마다 쓸쓸함을 삼키는
외딴 섬으로 서게 됩니다
잘 들어야만 사랑이 이루어짐을
들음의 삶으로써 보여주신 주님
오늘도 아침의 나팔꽃처럼
활짝 열린 가슴과 귀로
저희가 진정
주님의 말씀을 잘 듣게 하여 주소서
언어로 몸짓으로 마음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이웃의 언어에
민감히 귀기울일 줄 알게 하소서
말하기 전에
듣기를 먼저 배우는
겸손한 어린이의 모습으로
현재의 순간이 마지막인 듯이
성실을 다하는 수행자의 모습으로
들음의 여정을 다시 시작하는
들음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잘 들어서
지혜 더욱 밝아지고
잘 들어서
사랑 또한 깊어지는 복된 사람
평범하지만 들꽃 향기 풍기는
아름다운 들음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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