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terature(문학)/Poem(시)

우정일기1/이해인

2018. 12. 7. 17:49

 

 

 

 

 

 

우정 일기 1  / 이해인

 

1

내 마음속엔 아름다운 굴뚝이 하나 있지. 너를 향한 그리움이 하얀 연기로 피어오르다 노래가 되는

너의 집이기도 한 나의 집. 이 하얀 집으로 너는 오늘도 들어오렴, 친구야.

2

전에는 크게, 굵게 쏟아지는 소낙비처럼 한꺼번에 많은 것을 이야기하더니 지금은 작게, 가늘게 내리는

이슬비처럼 조용히 내게 오는 너. 네가 어디에 있든지 너는 쉬임없이 나를 적셔준다.

3

소금을 안은 바다처럼 내 안엔 늘 짜디짠 그리움이 가득하단다. 친구야. 미역처럼 싱싱한 기쁨들이

너를 위해 자라고 있단다. 파도에 씻긴 조약돌을 닮은 나의 하얀 기도가 빛나고 있단다.

4

네가 아프다는 말을 듣고 나는 아무 일도 할 수 없구나. 네 대신 아파줄 수 없어 안타까운 내 마음이

나의 몸까지도 아프게 하는 거 너는 알고 있니? 어서 일어나 네 밝은 얼굴을 다시 보여주렴.

내게 기쁨을 주는 너의 새 같은 목소리도 들려주렴.

5

내가 너를 보고 싶어하는 것처럼 너도 보고 싶니, 내가? 내가 너를 좋아하는 것처럼 너도 좋아하니, 나를?

알면서도 언제나 다시 묻는 말. 우리가 수없이 주고받는 어리지만 따뜻한 말. 어리석지만 정다운 말.

6

약속도 안했는데 똑같은 날 편지를 썼고, 똑같은 시간에 전화를 맞걸어서 통화가 안되던 일, 생각나니?

서로를 자꾸 생각하다보면 마음도 쌍둥이가 되나보지?

7

'내 마음에 있는 말을 네가 다 훔쳐가서 나는 편지에도 더 이상 쓸 말이 없다'며 너는 종종

아름다운 불평을 했지? 오랜만에 네게 편지를 쓰려고 고운 편지지를 꺼내놓고 생각에 잠겨 있는데

'무슨 말을 쓸거니?' 어느새 먼저 와서 활짝 웃는 너의 얼굴. 몰래 너를 기쁘게 해주려던 내 마음이

너무 빨리 들켜버린 것만 같아서 나는 더 이상 편지를 쓸 수가 없구나.

8

'밥 많이 먹고 건강해야 돼. 알았지?' 같은 나이에도 늘 엄마처럼 챙겨주는 너의 말.

'보고 싶어 혼났는데... 너 혹시 내 꿈 꾸지 않았니?' 하며 조용히 속삭이는 너의 말.

너의 모든 말들이 내게는 늘 아름다운 노래가 되는구나, 친구야.

9

나를 보고 미소하는 네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아도, 네가 보내준 편지들을 다시 꺼내 읽어봐도

나의 그리움은 채워지질 않는구나. 너와 나의 추억이 아무리 아름다운 보석으로 빛을 발한다 해도

오늘의 내겐 오늘의 네 소식이 가장 궁금하고 소중할 뿐이구나, 친구야.

10

비오는 날 듣는 뻐꾹새 소리가 더욱 새롭게 반가운 것처럼 내가 몹시 슬픔에 젖어 있을 때

네가 내게 들려준 위로의 말은 오랜 세월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단다.

11

아무도 모르게 숲에 숨어 있어도 나무와 나무 사이를 뚫고 들어와 나를 안아주는 햇빛처럼

너는 늘 조용히 온다.

12

네가 평소에 무심히 흘려놓은 말들도 내겐 다 아름답고 소중하다.

우리집 솔숲의 솔방울을 줍듯이 나는 네 말을 주워다 기도의 바구니에 넣어둔다.

13

매일 산 위에 올라 참는 법을 배운다. 몹시 그리운 마음, 궁금한 마음, 즉시 내보이지 않고 절제할 수 있음도

너를 위한 또 다른 사랑의 표현임을 조금씩 배우기 시작한다. 매일 산 위에 올라 바다를 보며 참는 힘을 키운다.

늘 보이지 않게 나를 키워주는 고마운 친구야.

 

 

 

 

'Literature(문학) > Poem(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를 흔들어 깨우소서 / 이해인  (0) 2018.12.11
우리집 /이해인  (0) 2018.12.09
우정 일기 2 / 이해인  (0) 2018.12.06
이해인 시 모음(기타)  (0) 2018.12.04
이해인 시 모음(기타)  (0) 2018.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