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중감량·우울증·간경화에 좋아
클로로겐산은 항산화·항염 효과
하루 한 잔, 사망률 12% 감소
디카페인 커피도 같은 효과
카페인, 아데노신의 잠 돕기 방해
심장 혈압 높이고 중독 부르기도
2017년 8월 미국 내과학술지(Ann.Int.Med)에 흑인·백인·황인 18만5000명을 16년간 추적한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1잔은 12%, 2~4잔은 18% 각각 사망률을 줄였다. 2012년 뉴잉글랜드 의학지 결과와 비슷하다. 마셔도 된다니, 아니 건강에 좋다니 커피 마니아들에게는 최고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논문을 유심히 보면, 절대 놓치면 안 되는 중요한 단서가 한 줄 있다. 카페인을 제거한 ‘디카페인 커피’도 같은 효과를 보였다. 즉 수명을 늘린 성분은 카페인이 아닌 다른 물질이란 이야기다. 그럼 카페인은 좋은가 나쁜가. 커피 성분을 들여다보자.
커피는 콩이 아니다. 콩처럼 생긴 나무열매다. 겉을 벗기면 두 쪽 원두가 나온다. 원두를 볶아 가루로 만든다. 여기에 뜨거운 물을 흘려 내리면 바로 커피다. 커피 65%를 차지하는 아라비카 원두에는 당(40%)·단백질(12%)·지질(15%)·클로로겐산(7%)·카페인(1%)과 니아신·비타민 등 1000종 물질이 있다.
커피 종류, 볶기(로스팅), 추출 방법(고압, 뜨거운 물, 찬물)에 따라 색, 향, 성분이 달라진다. 많이 볶으면 색은 짙어지지만 카페인은 똑같고 클로로겐산은 줄어든다. 찬물로 내리면 카페인이 적다. 디카페인 커피는 초임계(액체-기체 중간 형태) 이산화탄소로 카페인만을 추출·제거해서 만든다. 그래도 10% 정도 카페인이 남아 있다.
커피 클로로겐산은 폴리페놀 물질로 항산화·항염 효과가 있다. 이번 수명연구 결과 디카페인 커피도 수명연장에 도움이 됐다. 카페인을 제외한 나머지 성분들이 몸에 좋다는 이야기다. 이 결과에 고개가 끄떡여진다. 커피는 씨앗이기 때문이다. 씨앗에는 항산화제 등 많은 유용 성분들이 식물 DNA를 보호한다. 호두, 해바라기 씨, 녹차 속 항산화 성분은 싹이 날 때 최대로 늘어나 싹을 보호한다. 새싹 채소들이 인기 있는 이유다.
지난 30년간 커피건강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대부분 긍정적이다. 대부분이라고 단서를 단 이유는 연구 대상 인원수가 적거나 생활습관, 유전인자가 다양할 경우 부정적 결과가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독일 대문호 괴테는 커피 애호가였다. 한 잔에 힘이 솟고 머리가 맑아지는 커피 성분이 궁금했다. 친구에게 부탁했다. 1819년 화학자 프레드리 룬게가 카페인을 분리했다. 카페인은 60여 종 식물에 있다. 커피, 녹차에 가장 많다. 카페인은 두뇌 중추신경 작용 약물이다. 미 식품의약국(FDA) 약 리스트에도 올라가 있다. 의료용(미숙아 무호흡증치료)으로도 쓰인다. 카페인은 두 가지 작용을 한다. 흥분과 각성이다.
이유는 이렇다. 하루 동안 활동으로 두뇌에는 아데노신이 축적된다. 이 아데노신이 수용체에 달라붙으면 두뇌 내부 신호전달이 느려진다. 졸리게 된다. 혈관도 확장시켜 잠잘 동안 산소를 잘 공급케 한다. 카페인은 아데노신 대신 수용체에 달라붙어 아데노신의 수면유도 역할을 방해한다. 정신이 또렷해진다. 효과는 15분 내 나타나서 6시간 지속된다. 왜 누구는 5잔에도 졸리고 누구는 한 모금에도 잠을 설치나.
2014년 시카고대학 연구에 의하면 커피 마실 수 있는 양은 개인유전자가 45% 결정한다. 두 개 유전자(카페인 분해효소, 아데노신 수용체)가 핵심이다. 분해효소가 강할수록 카페인이 빨리 없어져 잠을 망치지 않는다. 분해가 느리면 조금 마셔도 체내 카페인이 오래 그리고 높게 유지된다. 그 결과 가슴이 벌렁대고 잠이 안 온다. 실제로 2016년 저명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는 커피를 습관적으로 마시게 하는 유전자(PDSS2)를 보고했다. 이 유전자는 카페인 분해속도를 결정한다. 유전자에 따라 카페인 분해속도는 최고 40배까지 차이 난다. 임산부는 분해속도가 떨어져 체내 카페인이 상승, 태아에 악영향을 준다. 분해효소는 나이 따라 약해져 오후 한 잔 커피에도 잠을 더 설치게 된다.
두 번째 유전자는 아데노신 수용체다. 종류에 따라 잠 설치는 정도가 다르다. 특정 부위 염기종류(TT, CT, CC)에 따라 둔감, 중간, 예민 타입으로 나뉜다. 예민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카페인이 높아지면 깊은 수면상태(논렘수면)에서 베타파가 증가한다. 이 현상은 불면증환자에게서도 보인다. 만약 카페인 분해유전자가 약한 사람이 수면수용체(아데노신)마저 예민한 유전자 형태(C/C)라면 아침 한 모금 커피에도 홀딱 밤을 새우게 된다. 물론 독한 마음으로 커피를 하루 6잔, 2주간 마시면 둔감해진다. 하지만 그걸 계속 유지 안 하면 다시 예민해진다. 이에 비해 카페인 분해 잘하고 수면에 둔감한 유전자 타입은 언제나 잘 마신다. 잘 마시는 사람이 때로는 카페인 중독자가 된다.
커피를 처음 마시면 한 잔에도 기분이 좋아지고 정신이 또렷해진다. 하지만 카페인은 금방 내성이 생긴다. 1잔이 2잔을 넘어 5잔이 되어야 커피 마신 기분이 든다. 건강에 부담이 되는 선을 넘어서기 십상이다. FDA 권장 카페인 최대량은 하루 400㎎이다. 아메리카노(80~120㎎/잔) 4~5잔이다. 카페인은 에스프레소(30~70㎎/잔), 인스턴트커피(100㎎/잔), 녹차(80㎎/잔), 콜라(40㎎/캔), 초콜릿 바(50㎎/개) 등 커피 종류, 기호식품에 따라 함량이 다르다. 권장량을 매일 넘는다면 카페인 내성이 생긴 중독 상태다.
내성을 없애 보자. 쉬운 방법은 커피 마시는 양을 ‘리셋’시키기다. 즉 일주일 정도 커피를 끊으면 카페인 예민도가 최초의 아주 예민한 상태가 된다. 한 잔 마셔도 기분이 좋아지고 정신이 또렷해진다. 리셋시키려면 독한 마음이 필요하다. 금단현상 때문이다.
섭취해서 기분이 금방 좋아지는 것, 예를 들면 니코틴, 알코올, 마약, 커피는 모두 두뇌 쾌락회로(보상회로)를 형성한다. 자꾸 섭취하게 만든다. 결국 중독이 된다. 커피도 안 마시면 두통이 생기고 불안해진다. 금단현상이다. 카페인 중독을 병으로 분류하는 정신의학학회도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알코올·니코틴에 비해 금단현상이 약하다는 점이다. 조금 참으면 최초의 예민한 상태가 된다. 리셋시키면 한 잔에도 기분이 좋아지고 정신이 또렷해진다. 몸에도 좋고 커피값도 줄인다.
“나는 살아온 날을 커피잔 수로 센다.” T.S. 엘리엇 이야기처럼 커피 한 잔은 삶의 여유이고 활력이고 소통이다. 하지만 적당량을 넘지 말자. 블랙으로 마시자. 인공감미료는 성인병을 2배 높인다. 건강, 수면, 중독이 걱정되면 디카페인도 좋다. 『카페인 권하는 사회』의 저자 머리 카펜터는 이야기한다. “카페인을 즐기는 최고의 방법은 절제다.”
[출처 : 중앙일보]